2년 전 이맘때, 그룹 버스커버스커가 '여수 밤바다'란 노래를 내놓자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열광하듯 여수 바다를 찾았다. 이어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자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이 몰려들었고, 해외 관광객들까지 여수를 방문했다.
|
전라남도 여수시 낙포동. GS칼텍스 원유부두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2㎞정도 떨어진 곳에 신덕마을과 신덕항 그리고 신덕해수욕장이 있다. 260가구에 400여명이 사는 단출하고 조용한 어촌 마을이다. 그리고 이번 원유 유출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이다.
꽤 세찬 봄비에 신덕마을은 조용했고, 멀리서 보기엔 평온해 보였다. 여수 봄 바다는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마을로 들어가니 하얀 물체 100여개가 갯벌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멀리서 보기엔 하얀 새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잠깐 빠졌던 봄 바다의 정취는 점차 사라졌다. 하얀 물체는 하얀 방제복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쓴 신덕마을 주민 100여명이었다. 갯벌에서 조개나 물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아직도 남아있는 GS칼텍스의 기름을 닦고 있는 주민들이었다. GS칼텍스 직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신덕마을의 한 노인은 기자에게 갯벌 흙을 내밀며 "냄새가 나냐?"고 되묻더니 "이젠 이 냄새가 익숙해 더이상 냄새가 나는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갯벌에 들어간 지 10분 정도 지나자 살짝 어지러움에 구토 증상까지 느껴졌는데 신덕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새댁, 청년, 학생 등 너나할 것 없이 주민들은 꿋꿋하게 갯벌을 파고 기름을 닦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갯벌 깊은 곳으로 스며든 기름을 다 닦아내기란 소원해 보였다.
|
아이들 건강이 제일 걱정
신덕마을 주민은 "바지락이 다 죽었다. 3월이면 바지락이 가장 맛있을 때라, 지금쯤 바지락을 캐고 있어야 하는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신덕항 갯벌엔 바지락, 쏙 같은 갯벌 생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은 엄지손톱 크기의 바지락들만이 갯벌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다고 생계가 문제의 전부도 아니었다. 신덕마을 주민들을 가장 걱정스럽게 만드는 건 환경과 건강이었다.
아이를 둔 엄마는 "우리는 그렇다 쳐도 아이들 건강이 가장 걱정이다. 당장은 이렇게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지 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수환경운동연합과 여수 YMCA 등 2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GS칼텍스 원유부두 기름유출사고 시민대책본부'는 사고 발생 5일후 측정 결과 사고 현장의 대기에 1급 발암물질 '벤젠'의 측정결과 기준치의 50배인 52.2ppb가 검출됐고, 초기 방제작업에 나섰던 주민들의 소변에서 피부질환을 유발하는 독성물질 '크실렌(Methyl Hippuric acid)'이 매우 높게 검출됐다고 밝혔다.
시민대책본부 측은 "사고 지역 주민들은 고농도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건강 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신덕마을 벗어난다고 원유 유출 사고에 대한 피해가 없는 게 아니었다. 여수 시민들은 이번 사고의 2차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피해는 여수 수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었다. 원유 유출 사고 이후 여수 수산물의 판로는 사실상 막혔다. 실제로 한 수산물 업자는 서울까지 수산물을 싣고 올라갔다가 여수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대로 차를 돌려 내려와야만 했다. 가깝게는 신덕항, 멀게는 오동도까지 원유가 퍼졌지만 실제 여수 수산물에 대한 피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유가 퍼진 곳은 근해이고, 조업을 하는 바다는 멀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GS칼텍스 원유 사고로 여수 수산물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어선들이 여수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뱃길을 돌렸다.
관광객도 현저하게 줄었다. 낚시꾼과 관광객을 상대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원유 유출 피해를 직접 본 곳은 신덕항 주변인데, 여수 바다를 찾는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 요즘엔 낚시꾼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편의점 운영이 어려울 지경이다"라고 한탄했다.
한 부동산중개인은 "여수 원유 유출 사고가 자꾸 언론에 노출되는 게 여수 시민들에겐 솔직히 반갑지 않다. 자꾸 이미지만 나빠져서 외지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
|
원유 유출 사고는 1차적으로 GS칼텍스의 책임이 가장 크다. 'GS칼텍스가 1차적인 피해자'라는 말은 여수에선 어불성설이었다. 실제 사고가 난 원유부두는 GS칼텍스 소유지에 설치된 부두고, GS칼텍스의 통제를 받는 곳이다. 또 바다로 흘러든 원유 역시 GS칼텍스 소유다. 안전속도를 무시한 도선사의 잘못도 있지만, 해무사가 없던 상황은 분명한 GS칼텍스의 책임이다.
게다가 사고 발생 후 40분이 지나서야 신고를 하는 늑장대응을 했다. 또 최초 유출된 원유량을 800ℓ라고 축소해 발표하기도 했다. 여수해경이 산출한 유출량은 원유 339㎘, 나프타 284㎘, 유성 혼합물 32∼131㎘ 등으로 최소 655㎘에서 최대 754㎘에 달한다. 이는 GS칼텍스가 최초 발표한 유출량보다 90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GS칼텍스의 도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피해 주민들에 대한 보상 진행도 더딘 상태다.
GS칼텍스 측은 "현재 외부산정기관이 어민 피해액을 산출하고 있는 중이다. 피해액이 결정돼야 주민들과 보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 마무리가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1차 보상금으로 20억원이 지급됐고, 2차 보상금이 이번 주에 지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1차 보상금은 방제 작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일당 형식으로 지급됐고, 2차 보상금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수환경운동연합 측은 "95년 여수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때도 LG정유(현 GS칼텍스)가 보험을 들어나 충분히 보상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선주와 양식장 업주들이 보상금의 대부분을 받았다. 실제 피해 주민들은 몇백만원 수준에 그쳤다"라며 "보상금을 논하기 전에 보상인지 배상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덕마을대책본부 측 역시 "아직 GS칼텍스와 구체적으로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박종권기자 jkp@sports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