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몸과 마음의 찌든 때를 절로 씻어 주는가 하면, 청신한 향기 가득한 숲길을 거닐며 역사를 반추하는 시간은 여느 여행길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품위를 느끼게 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온 가족이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의 터전, 조선 왕릉으로 떠나는 나들이는 근사한 '문화재 활용기행'의 전형이 된다. 동구릉(구리)=글·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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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특히 600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동구릉은 조선 초부터 후기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어 지난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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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매력은 역사-문화 공간인 동시에 계절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 왕릉 군락인 동구릉이 그중 백미다. 면적이 면적 191만 5891㎡(55만 3616평)으로 광활한 숲이며, 능(陵)에서 능으로 이어진 숲길의 곡선미가 특히 아름답다.
우선 동구릉 주차장-매표소를 지나면 커다란 홍살문이 나온다. 왕릉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시설로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의미다. 아홉 능마다 별도의 홍살문이 설치돼 있다.
동구릉 탐방은 오른쪽 방면 동선을 택하는 게 수월하다. 시계 바늘 진행의 반대 방향으로 돌며 수릉~현릉~건원릉~목릉~휘릉~원릉~경릉~혜릉~숭릉을 차례로 들르는 여정이다. 이들 왕릉 가운데 숭릉은 야생조수보호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왕릉은 크게 진입 공간(금천교~홍살문 앞), 제향 공간(홍살문~정자각, 비각), 능침 공간(석물, 능침<봉분>, 곡장)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내방객은 '진입~제향 공간'을 관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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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의 공간철학에는 신비감이 배어 있다. 능 지척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은밀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풍수의 기본으로 흔히 옛 마을의 배치와도 흡사하다. 큰 길 밖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제서야 왕릉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홍살문이 나타나는 식이다. 반면 능침이 들어선 사초지 위에 올라서면 좌청룡 우백호에 전방이 탁 트인 숲과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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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나들이의 묘미는 잠들어 있는 주인공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뒷얘기도 한 몫을 한다. 특히 조선 왕릉은 불과 600년 미만의 가까운 과거사를 담고 있어 역사드라마 속의 실존 인물을 대하는 듯 더 실감이 난다.
수릉은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효명세자(훗날 문조로 추존)와 신정왕후 조씨를 합장한 능이다. 문조는 세자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해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며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때 문조로 추존됐다. 일찍이 홀로된 신정왕후는 철종에 이어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으로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하는 등 83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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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4대 임금인 선조가 잠든 목릉은 동구릉에서도 가장 넓다. 선조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자각을 중심으로 계비의 능은 오른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하고 있어 봉분 3기를 나란히 모셔 놓은 경릉과는 대조적이다. 목릉으로 진입하는 길옆으로는 소나무와 서어나무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정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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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를 모신 숭릉은 출입제한지역. 정자각이 조선왕릉 중 유일한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으로, 마침 능 주변 조경물에 대한 보수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숭릉 아래쪽 철새도래지 연못 또한 제한구역이다. 허가를 받고 들어 가봤더니 우거진 갈대 습지가 자연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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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중앙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 2번, 6번이용) ◇버스(청량리서 88번, 202번, 강변역 1번, 1-1번, 92번)
관람 팁=◇이용 시간: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 화~일요일(하절기 오전 6시~오후 6시 30분, 동절기 오전 6시 30분~오후 5시 30분), 입장료 어린이 500 원, 어른 1000 원. (문의: 031-563-2909)
동구릉 관람 동선=매표소~재실~수릉~현릉~건원릉~목릉~휘릉~원릉~경릉~혜릉~숭릉(관람 제한 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