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코리아(One Korea), 길을 찾다
꽉 막혔던 동북아에 평화의 길이 열린다.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스포츠 각 종목과 대중문화, 나아가 경제 교류까지 점점 넓어질 남북 교류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거시적인 현실 파악의 기반 위에서 장기적 관점의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단체와 기업만이 남북교류의 역사적 흐름에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
남북 교류의 시대, 그 엄청난 역사적 화두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는 지자체와 기업들을 위해 각 종목, 각 분야 별 시리즈를 통해 정확한 현실 진단과 더불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②남북 골프, 북한판 박인비와 KLPGA in 평양골프장
|
북한 골프. 어떤 느낌이 드는가.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무슨 골프? 과연 대중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실제 북한은 오랫동안 골프의 불모지였다. 이념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부르주아적 운동'이라는 부정적 시선이었다. 골프장 자체가 귀하다 보니 대중의 이용은 쉽지 않았다. 1987년 평양 남서쪽 태성호 주변에 평양 골프장(18홀, 6200m)이 지어졌지만 평균 월급을 훌쩍 넘는 이용료를 감안할 때 대중시설로 보기는 힘들다. 고위층과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정적 시설이다.
하지만 골프에 대한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골프에 대한 같한 관심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스포츠 전반에 대한 진흥 의지가 확고하다. 지난 3월 30일자 북한 '로동신문'에 따르면 '체육강국건설을 위한 강령적지침'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체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켜 가까운 몇해 안에 우리 나라를 존엄 높은 체육강국의 지위에 올려 세우려는 것은 우리 당의 결심이며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3년 전인 2015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체육강국건설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는 발표를 통해 체육진흥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
이러한 체육 진흥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 속에 골프는 특별 관심종목 중 하나다. 2011년부터 평양 골프장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골프 국제대회도 매년 열고 있다. 골프 육성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는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편입되면서 강화됐다.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본 뒤 '북한 골프 유망주 육성'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체육교류를 위해 수차례 방북한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최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여자 골프 선수들을 미국 LPGA에 진출시킬 것이다. 내가 전문가들과 함께 선수를 선발해 집중적으로 훈련시킬 것이다. 전문적으로 육성하기로 북한과 합의를 해서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가능할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가가 소질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선별해 장기적으로 육성하면 된다. 다만 이를 지원할 남북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허남양 한국 중고등학교 골프연맹 부회장이자 주니어골프 월드컵 아시아대륙 대표이사는 "골프에 입문하는 학생들은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한다. 체격조건이 좋고 파워와 신경반응이 좋은 아이들을 학교에 편입시켜 장기 육성하는 방법이 있다"며 "정책적인 문제가 전제돼야겠지만 실현된다면 재미있는 그림이 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허 부회장은 북한 선수들의 승부근성과 한국 특유의 골프 재능 간 시너지에 주목했다. 그는 "북한 선수가 멘탈이 강할 수 있다. 주니어는 한국 정상이면 세계 정상이다. 우리나라 애들이 참 잘한다. 동남아는 물론 일본과 중국 주니어들도 한국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싶어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남북 합작 '박인비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 있는 선수가 탄생할 경우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국내 미디어의 지속적 관심은 물론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경식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그룹장은 "LPGA에 갈 만한 선수급이라면 우리 기업들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후원을 안 할 이유가 없다"며 경제적 측면에서의 상품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
KLPGA 투어의 평양 개최. 뜬금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물밑에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미 KLPGA, 더 나아가 LPGA의 평양 대회 개최를 놓고 굵직한 두 금융사 간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LPGA 평양개최를 추진중인 한 금융사의 경우 회장과 임원진이 대거 방북을 예정하고 있을 만큼 관심이 뜨겁다. 중계 방송사들 역시 평양 대회 개최에 적극적이다. KLPGA 측은 "아직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제안을 받은 바 없다"면서도 "하지만 향후 정부 차원에서 대회개최가 합의된다면 적극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KLPGA 투어의 평양 개최는 남북 화해 모드를 타고 올 봄에도 한차례 타진된 바 있다. 가을에 열리는 한 대회를 평양에서 개최하기 위해 대회 주최 측에서 여러 루트로 알아봤지만 시간적 촉박함으로 인해 일단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안대로 한국에서 개최하는 결론이 나면서 대회 에이전시 선정 등이 늦어져 진행에 다소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KLPGA 대회는 지난 2005년 8월 평화자동차 주최로 평양골프장에서 한차례 열린 바 있다. 당시 30명의 국내 선수들이 출전해 36홀 경기를 치른 끝에 송보배가 우승했다.
내년에 14년 만에 KLPGA 대회가 재개된다면 남북 평화의 기조 속에 지속성과 확장성을 가진 대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하는 골프 강국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이뤄지면 '여름에는 백두에서, 봄가을에는 한라에서' KLPGA 투어가 현실화 될 수 있다.
KLPGA 투어의 북한 확장은 경제적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 골프의 북한 시장 확장 가능성이 큰 만큼 인프라 확충에 한국 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다. 점차 확장될 민간 교류 흐름 속에 북한 명소 관광이 포함된 골프 투어 상품 기획도 가능하다.
|
골프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이라 아직 갈 길은 멀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선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무대가 바로 북한 시장일 수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