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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연장 패배 최나연, 심리 장벽에 막히다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1-08-22 14:16 | 최종수정 2011-08-22 14:16


◇최나연. 스포츠조선 DB

스포츠에서 '슈퍼 스타'로 불렸던 선수들은 늘 위기에 강했다. 누구나 긴장하는 순간에 더 침착하고,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외다리 승부를 오히려 즐겼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 그랬고, 망가지기 전의 타이거 우즈가 그랬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은 이들을 두려워했고, 존경했다. 스포츠 화두는 늘 '정신력(Mental Power)'이다. 세월이 흘러 장비가 바뀌고, 전술은 달라질지언정 본질은 변함이 없다.

21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최나연(24·SK텔레콤)이 역전패를 당했다. 3라운드짜리 대회에서 2라운드까지 2위에 3타 앞섰던 최나연이었다. 하지만 마지막날 경기가 풀리지 않더니 무려 9타 뒤져 있던 수잔 페테르손(노르웨이)과 연장을 치러야 했다. 최나연은 2타를 잃어 합계 6언더파, 페테르손은 7타를 줄여 합계 6언더파. 페테르손의 기세에 눌린 최나연은 연장 첫 홀에서 무너졌다.

찜찜하게 연장에 끌려들어가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최나연.

심리적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몇 차례의 치명적 실수는 지난해 LPGA 상금왕을 2년 전 혼란 속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17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은 최나연은 1타 차로 앞서 있어 18번홀에서 파만 해도 됐지만 어프로치샷이 터무니없이 짧았다. 18번홀 그린 깃대 반대편에 있던 워터 해저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명적인 보기로 연장을 허용했고, 18번홀에서 펼쳐진 첫번째 연장에선 세컨드샷이 물에 빠졌다. 135야드를 남기고 9번 아이언을 잡았지만 볼은 그린 옆 경사 면을 때린 뒤 물로 직행했다. 최나연은 "공격적으로 플레이 해 버디로 이기고 싶었다. 탬포가 빨랐던 것 같다. 맞는 순간에 물에 들어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최나연의 플레이를 되짚어보면 심리적인 부담감이 내내 어깨를 짓눌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첫날 6언더파, 2라운드 2언더파였는데 이날 2오버파를 기록했다. 우승이 가까워지고, 우승을 의식할수록 샷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정신력의 최고 잣대인 퍼팅은 더 많이 흔들렸다.

최나연은 경기후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모든 팬들이 지켜보고 계시는 줄 알았다. 한국여자골프의 LPGA 통산 100승이 걸려 있음도 알고 있었다. 긴장하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긴장은 이미 의식하는 순간 머리를 뛰어넘어 몸과 신경을 굳게 만든다.


최나연은 2009년 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우승 계기가 있었다. 바로 심리 치료였다. 그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는 4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다가 심리 치료를 잘 받은 뒤 부담감을 떨치고 우승했다. 그곳에서 최나연은 미야자토를 치료했던 피아 닐슨을 그때 만났다. 이후 치료를 받았고, 최나연은 곧바로 우승했다. 2009년 2승, 지난해 2승으로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받았다. 이후 2년 넘게 닐슨과 그의 동료인 린 메리어트는 최나연의 심리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최나연의 단짝인 김송희도 닐슨으로부터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닐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심리치료 전문가(심리치료 코치)다. 몸값도 비싸다. 최나연은 심리 치료에 시간당 500달러(약 60만원)를 지불하고 있다. 비시즌 때는 한번에 두 시간 정도, 1주일에 2~3차례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 한달에 4000달러(약 500만원)라는 큰 돈이 든다. 하지만 우승을 위한 투자라 생각했다. 또 부모님 없이 미국 올랜도 집에서 혼자 지내며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최나연에게 심리 치료는 경기 중 마음가짐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외로움과 스트레스 해소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6차례 톱10을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우승이 없다. 무엇보다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부진의 골이 더 깊어진다. 마지막날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은 더욱 신경이 쓰인다. 샷 매커니즘은 큰 문제가 없다. 지난해 좋은 성적을 올해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 우승에 대한 조급함 등이 나쁜 작용을 하고 있다는 주위 분석이 많다.

결과적으로 최나연은 이날 다 잡았던 우승 기회를 날렸다. 한국 선수들은 지난달 US여자오픈에서 유소연(21·한화)의 우승으로 LPGA 투어 통산 99승째를 기록 중이다. 3개 대회 연속 100승 달성에 실패했다.

한편, 박희영(24·하나금융)은 합계 5언더파로 1타가 모자라 연장에 합류하지 못했다. 마지막 18번홀 세컨드샷이 왼쪽으로 치우쳐 러프에 들어간 것이 뼈아팠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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