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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대표이사 주필이 19일 사망했다. 향년 98세.
현재는 시민구단이 된 도쿄 베르디 1969를 통해서다. 1969년 요미우리FC로 창단, 일본의 월드컵 유치 활동이 시작된 1980년대엔 미우라 가즈요시, 라모스 후이, 하시라타니 데쓰지 등 일본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데려와 '절대 1강'으로 군림했다. J리그 출범 원년인 1993년 베르디 가와사키로 참가. 1994년까지 리그-컵대회 2연패를 거두는 등 '축구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같은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1998년 베르디 경영권에서 손을 뗐다.
베르디 가와사키라는 구단명 외에 '요미우리 니폰FC'라는 명칭까지 넣었던 와타나베는 "기업이 스포츠를 키운다. 1명의 독재자가 공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을 내건다고 해서 성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가와부치 의장에 날을 세웠다. "J리그에 교진(요미우리 자이언츠 애칭)은 필요없다"고 주장해왔던 가와부치 의장 역시 "독재자에게 독재자라고 말해줘 영광"이라고 응수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요미우리는 떠났고, 2000년대 중반 니혼TV마저 이탈한 베르디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와타나베는 베르디를 떠난 뒤에도 J리그와 날을 세웠다. 그는 1999년 전일본공수가 지원하던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닛산자동차를 모기업으로 둔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흡수합병되자 "지금과 같은 체제는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장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J리그는 이대로 멸망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일본 스포츠지 닛칸스포츠는 '훗날 와타나베는 인터뷰를 통해 가와부치 의장과 서로 화해했다는 뜻을 밝혔다'고 돌아봤다.
흥행과 미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두 거인. '발전'이라는 지향점은 같았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J리그는 이제 K리그,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리그로 성장했다. 영면한 와타나베의 시선이 궁금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