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시즌 한국 프로축구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팀은 대구FC다.
2002년 한-일월드컵 훈풍을 타고 창단한 대구는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7위로 창단 후 최고 순위 타이기록을 세웠다. 나아가 정규리그 이후 이어진 FA컵에서는 리그 3위의 강호 울산을 꺾고 정상에 올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얻었다.
대구로서는 창단 16년 만에 처음으로 품는 우승컵이자 K리그 역대 시민구단으로는 성남(2014년)에 이어 두 번째 쾌거였다.
창단 초기 평균 관중 1000명도 안되는, 그저 그랬던 시민구단이 창단 후 최다 관중(1만8315명·FA컵 결승 2차전)을 불러모으는 '강소클럽'으로 우뚝 선 해가 2018년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숨은 공신이 있다.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64)다. 1970∼1980년대 국가대표와 프로축구 스타 플레이어를 거쳐 프로팀과 A대표팀 지도자로도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과거 경남 감독 시절(2008~2010년) 무명의 어린 선수를 잘 키운다고 해서 '조광래 유치원'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대구에서는 '교장 선생님'으로 성공을 도왔다.
산전수전 경험 풍부한 원로 선생님으로서 대구 코칭스태프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의 숨은 공로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지난 8월 26일 장맛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던 날, 대구는 K리그1 26라운드 홈경기에서 강원을 2대0으로 완파했다. 당시 대구는 리그 10위의 상대적 약체였고 강원은 돌풍을 몰아가며 6위를 달렸지만, 강원전 4연승으로 '강원킬러'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병수 강원 감독은 당시 "대구의 전력을 분석하는데 오판을 한 것 같다. 상대가 평상시와 다르게 나왔다"며 패배를 뼈아파했다. 이른바 '수 싸움'에 밀린 것.
|
조 대표는 "안드레 감독이 외국인이다 보니 상대팀의 숨은 곳까지 일일이 파악하기는 힘들고 그래서 통역을 통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면서 "대충 성의없이 조언할 수 없으니 과거 감독 시절 사용했던 자료들 꺼내서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거 자꾸 알려지면 별로다. 또 사장이 뒤에서 조종한다느니 그런 소리 들리면 우짤라고(어떻게 하려고) 그라노?" 조 대표는 자신의 숨은 조력이 왜곡될까 우려해 한사코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 대표가 그렇게까지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한 관계자는 "조 대표는 안드레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때 '니 혼자 알아서 단디(성의있게 제대로) 해봐라'하며 감독과 구단의 역할에 선을 그었다. 훈련장에 일부러 가지 않기도 했다"면서 "상반기에 한동안 부진했을 때 안드레 감독이 슬쩍 조 대표께 조언을 구했다가 '꿀팁'을 얻어 효과보고 나서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조 대표를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즌 상반기까지만 해도 10위에서 헤매던 대구는 당시 강원전 승리를 시작으로 3년 만에 첫 4연승을 포함, 남은 13경기에서 2패(8승3무)밖에 하지 않으며 하위스플릿 최상위로 마감하더니 FA컵 정상까지 질주했다.
선수 시절 두 차례 우승(1984, 1987년·대우 로얄즈), 감독 시절 한 차례 우승(2000년·안양 LG)에 이어 구단 대표로서 정상에 오르며 K리그 최초로 '선수-감독-행정가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조광래.
'유치원 원장'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변신 성공한 그의 집무실 책상은 2018년 대구의 기분좋은 '비하인드 스토리' 현장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