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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8000만원.
그는 원래 농구선수였다. '제2의 펠레' 네이마르 보다 '3점슛의 제왕' 스테판 커리에 더 열광했다. 하지만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축구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가 17세였다. 발전 속도는 빨랐다. 지역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은퇴 후 구단주로 변신한 '브라질의 레전드' 주니뉴 파울리스타의 눈에도 들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격 탓에 껍질을 깨지 못하고 안주했다.
경남의 레이더에 포착된 그는 안주 대신 도전을 택했다. 이역만리 한국땅을 밟았다. 그곳에서 인생을 바꿀 은사를 만났다. 김종부 감독이었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김 감독은 1대1 지도로 말컹의 단점을 하나씩 고쳐나갔다. 농구 스타일로 축구를 하던 말컹은 김 감독의 지도 속에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몇달이면 충분했다. K리그2(2부리그) 개막과 함께 폭발했다. 경남을 우승으로 이끈 그는 K리그2 MVP,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스스로 운명을 바꾼, 신데렐라 스토리를 품은 선수, '경남의 괴물' 말컹이었다.
말컹이 K리그 최고의 별로 우뚝 섰다. 말컹은 3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 어워즈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말컹은 K리그1 각 팀 주장(30%)-감독(30%)-기자단(40%) 투표로 치러진 MVP 투표에서 100점 만점의 환산점수 중 55.04점을 받아, 32.13점을 받은 이 용(전북)을 제치고 MVP의 영예를 안았다. 말컹은 K리그1과 2에서 MVP와 득점왕을 모두 거머쥔 유일한 선수가 됐다. 단 2년만에 이뤄낸 역사다.
말컹은 올 시즌 괴물 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야말로 리그를 지배했다. 31경기에서 출전해 26골을 폭발시켰다. 아쉽게도 2012년 당시 서울에서 뛰었던 데얀이 기록한 역대 한시즌 최다골인 31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당시 데얀은 40경기 이상을 뛰었다. 올 시즌 경기당 0.84골을 넣은 말컹은 2010년 유병수(당시 인천)과 2011년 데얀(당시 서울)이 갖고 있는 역대 최다 경기당 득점기록인 0.79골을 뛰어넘었다.
올 시즌 5도움을 기록한 말컹은 26골과 합쳐 경기당 1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말컹의 출전은 곧 골을 의미했다. 2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 역대 경기당 공격포인트 1.00개 이상을 올린 선수는 2003년 김도훈(경기당 1.03개), 2007년 까보레(경기당 1.00개), 2011년 이동국(경기당 1.07개), 2011년 데얀(경기당 1.03개)까지 단 4명에 불과하다. 말컹은 그야말로 레전드급 시즌을 보냈다.
말컹의 활약 속에 경남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말컹은 이제 아시아가 주목하는 공격수가 됐다. 그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 중동의 부자구단들이 돈다발을 싸들고 유혹하고 있다.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예상 이적료+연봉만 해도 180억원에 달한다. 한국에 올 당시 몸값의 정확히 100배 폭등이다.
말컹은 지난 해 K리그2 MVP를 수상한 후 "내년에도 모두를 놀라게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 약속을 멋지게 지켰다. 덤으로 그가 좋아하는 'K팝 걸그룹' 트와이스로부터 축하까지 받았다. 2018년, K리그는 말컹 천하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