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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듣는 김종부 감독, 리더십의 요체는 촉, 믿음, 그리고 축구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8-07 15:58 | 최종수정 2018-08-08 05:00



김종부 경남 감독은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자신을 꾸미는데 관심이 없는 김 감독이 유일하게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음향 기기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부터 최신 힙합까지 듣는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심신을 다스린다. 김 감독은 혼자 있는데 익숙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는다. 술자리에서 한 모든 이야기를 기억할 정도다. 어쩌다 한번씩 이야기를 쏟아낼때도 있다. 하지만 속내는 아끼는 편이다.

사실 김 감독의 이런 성향은 과거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 감독은 당시 현대-대우의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렸다. 어른들 싸움의 희생양이 된 김 감독은 자신의 재능을 100% 펼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는 그 뒤로 사람들을 잘 믿지 못했다. 정확히는 마음을 열지 못했다.

김 감독의 이런 성향은 선수단 운영에도 이어진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 흔한 미팅도 잘하지 않는다. 따로 선수들과 식사자리를 마련하거나, 술 한잔 하는 일도 없다. 프런트가 선수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모를 정도다. 사실 크게 관심도 없다. 대화와 관계 형성을 통해 동기부여를 만드는 여타 감독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하지만 경남 선수들은 김 감독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 '김종부 리더십'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경남 돌풍은 김 감독을 제외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이렇다 할 스타도 없는 경남은 매 경기 이변을 만들며 K리그를 강타하고 있다. 올 시즌 갓 승격한 경남은 K리그1 2위를 달리고 있다. 5일에는 '절대 1강' 전북을 1대0으로 제압하며 다시 한번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

김종부 매직의 출발점은 심플하게도 '축구'다. 김 감독은 철저하게 축구로만 선수들을 평가한다. 외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평가 기준은 오로지 훈련장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모습 뿐이다. 그 기준이 워낙 엄격하고, 정확하다보니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김 감독의 머릿속에는 축구만으로 가득하다. 시도민구단 감독이 으레 해야하는 정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재미 있는 것은 김 감독이 다른 팀에도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유명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팀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다른 팀 비디오 분석도 보지만, 전술 형태만 참고할 뿐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경남의 축구를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김 감독은 기술 축구를 선호한다. 경남은 많이 뛰는 축구로 대표되지만, 김 감독은 기술이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 위로 올라갈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체력만큼이나 기술 훈련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터치부터 킥할 때 발목 각도까지 지도한다. 선수들이 한명씩 불러서 슛, 크로스 등 필요한 것을 따로 가르쳐준다. 기본기가 부족했던 말컹은 김 감독의 지도 아래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다. 선수들은 김 감독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르쳤던 대로 하지 않으면 가차 없다. 훈련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나오면 표정 한번으로 공기를 바꾼다. 물론 당근도 아끼지 않는다. 잘할 때는 아낌없이 휴가를 준다. 전북전을 앞두고 4일 휴식을 줬고, 그 뒤로 3일 휴식을 줬다. 체력적인 부분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성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지도자로 김 감독의 눈에 띄는 장점 중 하나는 '촉'이다. 선수들에게 김 감독에 관해 물어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골이 나왔다", "누구보고 이번에 골 넣을 거라고 하셨는데 진짜 그 선수가 넣었다" 같은 이야기다. 믿기 어렵지만, 경남 선수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포지션 변경 성공 사례도 많다. 여름이적시장 최고의 수확으로 꼽히는 이광진은 사실 중앙 미드필더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를 오른쪽 윙백으로 내세웠고, 그 선택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그만큼 상황을 읽는 눈이 좋다는 이야기다. 실제 김 감독은 시류에도 밝다. 지난 시즌부터 경남은 점유율을 포기하고, 대신 빠르게 전방을 향하는 축구로 바꿨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 보인 세계축구의 경향은 김 감독이 바꾼 그대로였다.


물론 축구만으로 팀 분위기를 완벽히 장악할 수는 없다. 김종부 매직에서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 김 감독은 단점 보다는 장점을 보는 지도자다. 선수들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도와준다. 장점에 대한 가능성을 보였다면 성장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준다. 고참들에 대한 믿음은 훨씬 더 두텁다. '저 나이까지 축구를 하고 있으면 인정해줘야 한다'는게 김 감독의 지론이다. 베테랑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회를 주려고 한다. 김 감독 밑에서 살아난 고참들은 팀 분위기를 주도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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