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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침묵하는 할릴호지치, 신바람난 슈틸리케...그 입 다물라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8-06-26 17:40 | 최종수정 2018-06-26 19:54



"한국이 3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것이다."

한국-독일전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 중국 텐진 감독이 독일 방송 ZDF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뭐 사실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만약 한국이나 독일과 무관한 제3자의 전망이라면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한 당사자가 슈틸리케라 불편하다. 독일인이어서 자국 승리를 예상했다 이런 차원이 아니다. 바로 직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오늘의 한국 축구 현실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그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한 때 정치판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란 표현이 유행한 적 있다. 누가 봐도 당연한 자기 잘못을 마치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 않은 듯 뻔뻔하게 이야기 한다는 조롱의 의미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딱 그 꼴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부진하자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비난과 조롱 섞인 말들을 퍼붓고 나섰다. 슬쩍 충고를 가장했지만 의도를 찬찬히 살피면 다분히 악의적 의도가 숨어있다. "한국은 잘못된 방향으로 백지상태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희생양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 자국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과연 러시아월드컵 예선까지 대표팀을 이끌던 한국팀 전 감독이 본선이 한창인 지금 이 시점에 뱉을 만한 적절한 코멘트였을까. 조별리그 통과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와 협회에 대한 원망 섞인 시선이 가득하다. 중간에 짤린 분풀이를 입으로 하는 모양새다.

그는 이를 갈며 떠났겠지만 한국은 그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 계약대로 잔여 임기 연봉도 다 챙겼다. 일시불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도 협회에서 슈틸리케 월급이 빠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의 오늘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던 한국축구의 어제가 드리운 그늘일 수 밖에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억울하다고 한다. 완성 단계에서 무분별한 대중의 비난에 못이긴 협회의 무소신에 자신이 희생됐다고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경질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 결단이 늦어진 게 오히려 문제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초창기는 달콤했다. 약한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패는 무패 행진 속에 모두가 '갓틸리케'를 칭송하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뒤늦게야 깨달았다. 독이 든 사과였음을…. 그저 맛있게 먹는 데만 몰두했다. 가끔 '이대로 괜찮을까'하는 회의적 시선은 간단하게 기우로 치부됐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준 것은 실리 없는 '점유율 축구'였다. 너무 약한 상대 앞에서 아무리 오래 공을 소유해도, 우리 지역에서 아무리 공이 오래 돌아도 '발전'이나 '색깔'과는 무관한 공놀이에 불과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가 바로 한국 축구의 새로운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골든 타임'을 한참 놓친 후에야 슈틸리케 감독의 능력치를 알아차렸다. 손을 쓰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선수선발과 기용, 전술 등 모든 면에서 전권을 줬다. 그 결과 편애하는 선수를 집중 선발하고 쓰는 동안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만의 색깔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무능이든 무책임이든 그건 바로 슈틸리케의 직접적인 책임이다. 물론 그의 실체를 일찌감치 알아보지 못한 혜안 부족의 협회와 언론, 팬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월드컵에서 아시아국가 중 유일하게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일본 축구를 보며 할릴호지치 전 감독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다 만들어 놓은 걸 숟가락만 얹었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잘 하고 있는 판이라 대놓고 그렇게 얘기할 수도 없으니 속에서 천불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슈틸리케 감독라면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못한 것을 대회를 코 앞에 두고 수습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물론 그런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기에 지금의 슈틸리케 감독은 마치 남의 일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한국 축구를 마음껏 비하하고 있다.

함께 먹던 우물에 침 뱉는 건 경우 없는 짓이다. 일반화의 오류지만 히딩크 감독의 인기로 네덜란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던 적이 있다. 자칫 슈틸리케 때문에 독일인 이미지까지 나빠질까 걱정이다. 잘못했으면 조용히 있는 게 도리다. 한국 축구가 그 어떤 수렁에 빠지든 그 어떤 책임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부탁한다. '조용히 그 입 다물라.'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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