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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이 ACL 16강 조기 확정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수원은 시드니와의 1차전에서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2대0으로 완승한 바 있다.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 시드니를 다시 만나 기분좋게 16강행을 조기에 확정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역시 공은 둥글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1차전 완승의 기억을 살려 공격 진용을 꾸렸지만 예상하지 못한 집중력 부족에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서정원 감독은 이날 출전 엔트리부터 선택과 집중을 절묘하게 섞었다. 선택의 중심은 크리스토밤이다. 오른쪽 윙백을 맡는 크리스토밤은 장단점이 극명했다. 공격지향적인 습성은 공격시 측면의 위력을 더할 수 있는 장점이지만 수비 전환에 너무 소극적이어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3월 1일 전남과의 K리그1 개막전 이후 그라운드에서 사라진 것도 단점 때문이었다. 그의 자리를 장호익이 대신해 잘 버텨왔던 수원은 이날 시드니전에서 크리스토밤을 다시 호출했다. 2개월 전 기분좋은 기억을 되살리고자 집중을 위해서다. 2월 14일 시드니와의 H조 1차전에서 수원은 장거리 원정에도 2대0으로 완승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 효과를 봤던 공격라인을 다시 불러왔다. 염기훈-데얀-바그닝요의 앞선에 좌-우 윙백으로 이기제-크리스토밤을 내세운 것. 시드니와의 1차전 승리 라인 그대로였다. 그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해 교체 투입했던 바그닝요에게 선발 기회를 준 것도 서 감독의 또다른 선택이다. 부상자로 인해 수비와 중앙 미드필드가 바뀌었지만 '학익진'을 연상케하는 공격 편대는 재가동됐다. "너희들을 여전히 신뢰한다. 더도 말고 1차전만큼만 하자"는 서 감독의 '믿음축구'였다.
해결사 데얀이 떴지만…
서 감독은 전날 미디어데이에서 "1차전에서 완승했다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하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차전 완승의 추억에 이어 홈경기라고 너무 방심했을까. 예상과 달리 난타전이었다. 1차전 때 호주리그 1위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기력했던 시드니는 크게 향상된 것은 없었다. 경기 초반부터 수원이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한순간 집중력 부족으로 역습에 당한 뒤 흔들렸다. 전반 23분 롱볼 역습 찬스에서 시드니의 닌코비치가 신화용의 키를 넘기는 로빙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습 패스에 수비 뒷공간이 뚫렸고 신화용이 너무 전진해 나왔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시드니의 기쁨은 1분 만에 잦아들었다. 해결사 데얀이 떴다. 1차전에서 2골을 독점했던 데얀은 24분 바그닝요의 측면 크로스를 받아 때린 첫 슈팅이 수비맞고 나오자 재차 정교한 오른발 슈팅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데얀은 이번 ACL 조별리그에서만 4골째, 3월 31일 K리그1 제주전(1대0 승)에 이어 연속골이다. 데얀의 화끈한 포문에 수원 응원석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수원의 동점골 기쁨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31분 코너킥 상황에서 알렉스 브로스케에게 헤딩골을 허용한 것. 이 역시 브로스케에 대한 대인마크 집중력이 부족한 결과였다. 수원은 후반 수비수 구자룡을 불러들이는 대신 임상협을 투입하며 16강 조기 확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너무 앞만 바라본 나머지 후반 33분 역습에 또 당했다. 뒷공간 패스를 받은 아드리안 미에르제에프스키가 골키퍼를 제친 뒤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수원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갔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보보에게 '확인사살'까지 받아야 했다.
수원=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