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저를 보고계시겠죠."
23일 창원축구센터, 김종부 감독이 이끄는 경남은 부천과의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31라운드 홈 경기에서 2대1 승리를 거뒀다. 2위 부산과의 격차를 벌린 소중한 승리. 김 감독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울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 그랬어요. 어머니."
김 감독은 19일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지난해 1월 한 번 쓰러지시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코에 호스를 연결해 식사를 하시며 버텨오셨는데 결국 가셨다. 더 붙잡고 싶지만 내 마음처럼 안 되더라." 김 감독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 감독은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홀로 5남매를 책임졌다. 가진 게 없었다. 통영 굴 양식장 일용직으로 가계를 꾸렸다. 그 때 김 감독은 다짐했다. "꼭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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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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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재능에 근성까지 갖춘 김 감독은 1983년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청소년선수권 4강을 견인했다. 몸값이 치솟았다. 1985년 프로팀 현대 호랑이와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했다. 하지만 울산 호랑이, 부산 대우의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렸고, 몇 차례 재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1995년 은퇴했다. 그 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어머니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막둥이. 높은 곳까지 올라갔기에 추락의 충격은 더 컸다. "종부야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김 감독은 다시 일어나 지도자로 돌아왔다. "아픔 겪었는데 축구를 놓지 않는다고 하니 어머니도 걱정이 많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축구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1997년 거제고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김 감독은 2002년 동의대 지휘봉을 잡고 FA컵서 포항을 제압, 대회 16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후 양주시민축구단을 거쳐 2013년 화성FC 사령탑에 앉았다. 그 동안 내공은 쌓였지만 지갑은 비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장어구이집을 열었다. "지도자 벌이가 시원치 않아 검은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그런 밑바닥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잠을 잊었다. 밤낮으로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희망이 보였다. 김 감독은 2014년 K3 우승을 맛봤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기회도 찾아왔다. 2016년 경남 감독으로 선임됐다. 잠시 적응기를 거친 김 감독은 승점 10점 감점에도 2016년 리그 8위로 시즌을 마친 뒤, 2017년 리그 18연속 무패 대기록(12승6무)을 세웠다. 이제 클래식 승격도 눈 앞으로 다가왔다. 다가올 안산, 부산전에서 연승을 거두면 조기 확정이다. "클래식 승격은 지금까지 내 축구 인생 최대의 성공이 아닐까."
하지만 풍수지탄이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승격을 달성하더라도 아이처럼 좋아하실 어머니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눈 감으면 환한 미소가 아직 선명한 어머니. 김 감독은 마음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승격하면 많이 좋아하시겠죠. 웃으며 '종부야 고생했다'라고 하실 것 같네요. 승격, 꼭 해내겠습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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