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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피난가는 것도 아니고…."
흔히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하지만 23일 중국전을 치른 한국 선수단은 경기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그라운드에서만큼이나 긴박한 '007 이동작전'을 펼쳐야 했다. 이런 소동을 겪게 된 것은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축구협회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중국과의 6차전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대홍역을 치렀다. 그동안 월드컵 예선 A매치 때 했던 대로 특별 전세기를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를 본격화하면서 한국 여행금지령과 함께 전세기 취항을 불허했다.
작년 9월 중국이 한국으로 원정왔을 때 한국 측이 해줬던 '융숭한' 대우에 비하면 사드 문제를 스포츠에 결부시킨 치졸한 조치였다. 당시 중국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2016년 7월)한 이후 한류 드라마 금지 등 보복 조치를 서서히 가동하고 있던 때다. 그래도 한국은 중국팀의 전세기 운항에 협조했고 비자 관련 일처리도 즉시 해결해줬다.
전세기 운항 불허로 일반 항공편을 준비하던 협회는 본격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결전지 중국 창사는 국적 항공사가 하루 한 편 정도 왕복 운항하는 곳이다. 19일 창사로 출국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귀국 시간이 문제였다. 대표팀이 이용한 A항공사의 창사→인천공항 여객기 출발시간은 매일 새벽 0시10분(이하 한국시각). 창사에서 한-중전이 킥오프된 시간은 23일 오후 8시35분이다.
경기 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으면 이튿날 자정까지 하루를 고스란히 버려야 한다. 시리아와의 7차전(28일)이 임박했고, 사드 문제로 분위기 뒤숭숭한 곳에서 지체할 이유도 없다.
협회가 이동계획을 궁리해 봤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후반 90분, 하프타임, 인저리타임 등을 감안하면 경기가 순조롭게 마칠 경우 10시30분이다. 창사 허룽스타디움에서 창사공항까지 자동차 이동시간은 교통체증 등 돌발 변수가 없을 경우 40분 정도. 4만여명의 중국 구름관중이 몰리는 곳에서 40분도 장담할 수 없다. 여기에 선수단 탑승 수속을 해야 하고 훈련 장비 등 챙겨야 할 짐꾸러미는 좀 많은가.
0시10분 탑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협회는 항공사 측에 도움을 요청해 1시간 가량 이륙을 늦추기로 허락받았다. 다행히 일반 탑승객이 많지 않아 양해를 얻을 수 있었고 사실상 한국 선수단 전세기 효과를 확보하게 됐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출발 시간을 1시간 정도 늦췄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른 감독 기자회견, 공동취재구역 선수 인터뷰와 함께 간단히 샤워하고 개인 짐을 싸려면 그마저도 빠듯했다.
결국 협회는 원정경기 사상 가장 많은 15명의 스태프를 동원해 수송 대책팀을 가동했다. 이들은 한국-중국전을 볼 겨를도 없이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훈련장비 등 휴대 불가능한 짐꾸러미를 공항으로 미리 실어나르느라 진땀을 흘렸다. 공항에서 대량의 짐을 부치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통관 수속을 밟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전세기만 띄울 수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피난작전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우여곡절 많은 해외 원정길은 처음인 것 같다"며 "주변의 도움으로 중국 원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