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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수원 삼성 단장의 아쉬운 작별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12-06 20:21


◇정대세의 입단식을 함께 한 이석명 단장(왼쪽).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오는 15일자로 수원 삼성 단장직에서 물러나는 이석명 단장(59)의 빈자리는 유난히 클 것 같다.

K리그는 클래식 12개팀, 챌린지 11개팀 등 23개 구단이 공존한다. 기업과 시도민구단의 융합이다. 구단마다 리더가 있다. 인사가 만사다. 함량미달의 '낙하산 대표'도 꽤 있다. 일례로 최근 챌린지의 한 도민구단 대표는 엉뚱한 제안을 해 축구판을 초토화시켰다. 자기 구단이 살기 위해 1부와 2부가 통합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강제는 축구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5일 승강플레이오프에서 2부로 떨어진 부산 아이파크는 대한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다. 부산도 2부 강등을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축구계의 생리이자 순기능이다. 그러나 그에게 K리그의 역사와 철학, 눈물과 땀은 난도질해도 될 만큼 '참 쉬운 판'이었나 보다. 그 구단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단장의 작별이 더 아쉽다. 그는 삼성전자에서도 손꼽히는 중국통이었다. 무려 16년간 중국에서 생활했다. 2012년 6월 고국으로 돌아와 재교육을 받다 축구단 단장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났다. 수원의 단장은 보통 상무가 맡아왔다. 직급이 전무인 그가 갈 자리는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가 예상한 임기는 1년 6개월이었다. 그리고 그룹에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룹내 축구단은 변방 중의 변방이다. 하지만 구단 직원들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신기한 조직이었다고 한다. 눈빛을 잃은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구성원들의 축구 열정과 사랑, 진지함에 깜짝 놀란 그는 축구단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전선에 뛰어들었다.

명색이 '1등 그룹' 삼성이 운영하는 축구단이다. 늘 풍족했다. 하지만 이 단장 재임 시절은 달랐다. 연봉 공개에 직격탄을 맞아 살림살이가 줄어들었다. 경영 효율화와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였다. 변화는 이 뿐이 아니었다. 축구단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었다. 험난한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올해 수원은 대단한 시도를 했다. K리그의 슬픈 얼굴인 '공짜표'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홈 경기 관중 전면 유료화를 선언했다. 성공적인 도전이었고, 프로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평균 관중이 줄었지만 1만명은 넘었다. 1만3195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1부 가운데 유일하게 유료관중 비율이 90%를 넘었다.

줄어 든 지원에 씀씀이가 축소됐고, 떠나 보낸 선수들도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따뜻한 정은 넘쳤다. 1976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줄곧 인사 계통에서 일을 했다. '조직관리의 기본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점을 실천했다. 백업 선수들에게는 자비를 털어 밥을 사주며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격려했다. 그 결과 수원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 수원의 자랑인 서포터스와도 상생의 길을 걸었고, K리그의 간판인 FC서울과의 슈퍼매치도 선의의 라이벌전으로 발전시켰다.

그렇게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그룹으로부터 3일 '인사 통보'를 받았다. '신기한 조직'의 구성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격려의 말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마산 출신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는 울컥했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생각했던 멘트를 지웠다. 마지막 인사는 단촐했다. "고맙다, 가서 일해."

삼성을 떠나는 이 단장은 4일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팬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우승 한 번 못한 무능한 단장으로 물러나 정말 아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단장이 되고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과연 그럴까. 15년차 축구기자인 필자의 눈에 '단장 이석명'은 K리그 최고 단장이었다. 주변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은 물론 떠난 선수들도 이 단장에게 아쉬움의 문자를 보냈다. 선수 가족들도 그의 이름 석자를 지울 수 없다. 유소년시스템도 재정비해 수많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발굴한 이 단장은 권창훈 아버지에게는 '빵 사러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한 축구인이 보낸 '축구 경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데… 우울하다'는 문자에는 미소로 화답했다.

K리그는 춥고, 배고프다. 과감한 투자가 아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 이 단장이 거울이 됐으면 한다. 이 단장도 수원 단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앞으로 축구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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