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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오는 15일자로 수원 삼성 단장직에서 물러나는 이석명 단장(59)의 빈자리는 유난히 클 것 같다.
명색이 '1등 그룹' 삼성이 운영하는 축구단이다. 늘 풍족했다. 하지만 이 단장 재임 시절은 달랐다. 연봉 공개에 직격탄을 맞아 살림살이가 줄어들었다. 경영 효율화와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였다. 변화는 이 뿐이 아니었다. 축구단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었다. 험난한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올해 수원은 대단한 시도를 했다. K리그의 슬픈 얼굴인 '공짜표'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홈 경기 관중 전면 유료화를 선언했다. 성공적인 도전이었고, 프로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평균 관중이 줄었지만 1만명은 넘었다. 1만3195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1부 가운데 유일하게 유료관중 비율이 90%를 넘었다.
그렇게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그룹으로부터 3일 '인사 통보'를 받았다. '신기한 조직'의 구성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격려의 말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마산 출신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는 울컥했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생각했던 멘트를 지웠다. 마지막 인사는 단촐했다. "고맙다, 가서 일해."
삼성을 떠나는 이 단장은 4일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팬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우승 한 번 못한 무능한 단장으로 물러나 정말 아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단장이 되고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과연 그럴까. 15년차 축구기자인 필자의 눈에 '단장 이석명'은 K리그 최고 단장이었다. 주변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은 물론 떠난 선수들도 이 단장에게 아쉬움의 문자를 보냈다. 선수 가족들도 그의 이름 석자를 지울 수 없다. 유소년시스템도 재정비해 수많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발굴한 이 단장은 권창훈 아버지에게는 '빵 사러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한 축구인이 보낸 '축구 경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데… 우울하다'는 문자에는 미소로 화답했다.
K리그는 춥고, 배고프다. 과감한 투자가 아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 이 단장이 거울이 됐으면 한다. 이 단장도 수원 단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앞으로 축구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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