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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컵]"축구 안했으면 군인 됐을 것" 이정협의 엉뚱함과 진지함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01-19 05:02


◇사진캡쳐=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17일(한국시각) 호주 브리즈번의 밤은 고요했습니다. 개최국 호주가 한국에 0대1로 패했기 때문이죠. 거리의 술집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꽉 들어찬 호주 팬들의 노란 물결은 순식간에 붉은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 교민들은 승리에 취하고, 술 한 잔에 더 취했죠. 한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태극전사, 그 중에서도 결승골을 폭발시킨 이정협(24·상주)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2년 전이었습니다. K리그 부산 담당 기자 시절, 신인 이정협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냐?"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군인이 됐을 거에요." 이 때부터 약간 엉뚱하다고 느꼈습니다. 성격은 조용하지만, 때로는 어디로 튈 지 모를 럭비공 같았죠. 그의 엉뚱함이 호주전에서도 발동됐습니다. 전반 33분, 골망을 흔든 뒤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했는데요. 표정에서 웃음기를 뺀 채 노란 물결로 경기장을 뒤엎은 호주 팬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더군요. 당시에는 골을 넣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팬들을 착각한 것처럼 보였는데요. 그런데 알고보니 의도된 세리머니였습니다. 경기 내내 태극전사들에게 야유를 보내던 4만여명의 호주 팬들을 향한 복수였던 셈이죠.

이정협은 호주전 전날 선발 출전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겠죠. 설레서 잠을 설쳤답니다. 마음에는 짐이 한가득이었죠. 10일 오만과의 1차전에서 후반 36분 교체투입돼 절호의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살리지 못했습니다. 노마크 찬스를 날려버렸죠. 빗맞은 공은 상대 골키퍼 앞으로 힘없이 굴러갔습니다. 슈팅 동작이 너무 커 창피함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만회를 한거죠. 창피함이 자랑스러움으로 변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정협은 또래보다 성숙했다고 합니다. 축구를 배우려는 자세가 진지했고, 무척 성실했다는데요. 동래고 시절 이정협을 지도했던 박형주 전 동래고 감독은 이정협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매일 개인운동을 잊지 않았고, 동기와 후배들도 잘 챙겨 팀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네요. 또 이정협은 부산MBC전국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였다는 사실도 알려줬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여린 탓에 '눈물의 사나이'기도 했답니다. 골을 못넣어 경기를 패하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네요.

부산 시절 이정협의 별명은 '진지맨'이었답니다. 그의 머릿 속에는 온통 축구 뿐이었다고 하네요. 항상 운동에 열중했답니다. 잠재력도 무궁무진했습니다. 다만, 2%가 부족했다네요. 무엇이었을까요. 기술과 소심함이었습니다.

이정협은 이번 아시안컵 활약으로 '무명'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적극성, 활동량, 킬러 본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8강에서도 이정협이 슈틸리케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브리즈번(호주)=스포츠2팀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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