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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의 일군 금메달의 시작과 끝은 '임창우'였다.
이 골로 임창우의 한도 한 방에 씻겨내려갔다. 울산 유스팀 출신인 임창우는 축구 엘리트였다. 15~17세 연령별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정작 뛰어야 할 곳에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2011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임창우는 지난 3년간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중앙 수비와 측면 수비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지만, 특별함이 부족했다. 주 포지션이 중앙 수비이긴 하지만, 체격조건이 뛰어나지 않았다. 오른쪽 풀백에서 뛰자니 부동의 이 용과 김영삼이 버티고 있었다. 현실은 2군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올시즌 임대를 떠났다. 행선지는 대전이었다. 임창우는 조진호 대전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꾸준하게 출전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 회복이었다. 그는 "대전에서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울산에선 경기를 못뛰어 위축됐는데 조진호 대전 감독님께서 출전 기회를 많이 부여해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임창우는 '운이 좋은 사나이'라고 해도 되겠다.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세 번째 옵션이었다. 이광종 감독이 원했던 주전자원은 박준강(부산)과 최성근(사간도스)였다. 지난 6월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첫 소집 명단에 임창우의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박준강이 부상을 했다. 아시안게임에 뛸 수 없게 됐다. 최성근도 대회 한 달 전 부상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임창우는 운좋게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모두 그라운드에 쏟아부었다. 우선 강철 체력이다. 조별리그 3경기와 토너먼트 4경기 등 7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물샐 틈 없는 수비는 기본이었다. 빠른 스피드를 살려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보여줬다.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도 갖췄다. 잡념도 버렸다. 그는 "노력도 많이했다. 자기 전부터 경기만 생각했다. 그 이미지트레이닝이 그라운드에서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금메달은 임창우에게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다. 임창우는 "A대표팀 명단 발표 때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젠 A대표팀 발탁에 욕심도 내고 싶다"고 전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