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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했던 램파드' 친정팀과 세리머니의 상관관계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9-22 14:30 | 최종수정 2014-09-23 06:25


램파드가 22일 친정팀 첼시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AFPBBNews = News1

1990년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보장해주는 보스만룰이 생긴 이래 '친정팀' 개념은 희미해져갔다. 물론 파울로 말디니(전 AC밀란), 라이언 긱스(전 맨유), 프란체스코 토티(AS로마) 같이 한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원클럽맨'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돈과 명예, 기회를 쫓아 팀을 옮긴다. '내 팀'이라는 낭만이 사라진 것이다.

22일(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시티와 첼시의 2014~201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5라운드는 축구에서 여전히 낭만이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주인공은 '푸른 빛'에서 '하늘색 빛'으로 색깔을 바꾼 프랭크 램파드였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첼시의 푸른 심장이었던 램파드가 친정팀 첼시의 골망을 흔들며 현 소속팀인 맨시티에 귀중한 승점을 선물했다. 후반 32분 교체투입된 램파드는 7분 뒤 제임스 밀너의 패스를 받아 문전에서 감각적인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세리머니는 없었다. 램파드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팀원들에게 기쁨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며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감동적인 장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첼시는 후반 막판 또 하나의 전설 디디에 드로그바를 투입했다. 첼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램파드와 드로그바가 적으로 만난 것이다. 두 선수는 각각 다른 유니폼을 입었지만 경기 후 뜨거운 포옹을 하며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었다. 만감이 교차한 램파드는 경기 후 그라운드를 돌았다. 첼시의 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아름다운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었다. 첼시 팬들은 자신의 팀을 상대로 동점골을 넣은 '적'이지만 램파드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램파드는 말그대로 첼시의 전설이었다. 첼시에서 총 648경기를 소화하며 '푸른심장' 으로 불렸던 램파드는 지난시즌 바비 탬블링의 팀 최다골 기록(370경기 202골)을 뛰어 넘는 211골을 기록했다. 첼시에서 유럽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는 올시즌을 앞두고 만수르 구단주가 만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의 뉴욕시티로 이적했지만, 신생팀 뉴욕시티가 내년 3월부터 리그에 참가하는 관계로 구단주가 같은 맨시티로 임대됐다. 경기 후 램파드는 "나에겐 몹시 힘든 상황이었다. 첼시 팬과 13년간 함께했었기 때문에 득점 이후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만약 첼시와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행동이었을 것이다"며 소감을 밝혔다.

친정팀에 예우를 표하기 위해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은 선수는 램파드 뿐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스타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다.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맨이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피오렌티나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피오렌티나가 강등됐을 때도 무수한 이적제의를 뿌리치고 잔류를 선언하는 등 피오렌티나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팬들은 피오렌티나에 바티스투타 동상을 세우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세리에A 우승을 위해 2000년 AS로마로 이적을 단행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팬들 역시 반대보다는 지지의 응원을 보냈다. 마침내 피오렌티나를 상대하게 된 바티스투타는 결승골을 성공시켰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팬들도 함께였다. 같은 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루이스 피구가 '친정팀'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위해 누캄프로 돌아오자 팬들이 엄청난 야유와 오물세례를 건낸 것과 묘한 대조를 보였다. 이를 본 한 축구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피구가 축구계가 얼마나 냉혹해졌는지 보여줬다면, 바티스투타는 축구에 아직 낭만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세계 최고의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스포르팅 리스본과 맨유 등 전 소속팀과 만나 골을 넣었을 때는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는다.

친정팀과 아름다운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마누엘 아데바요르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여름 아스널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아데바요르는 그해 9월 아스널을 맞아 쐐기골을 터뜨렸다. 아데바요르는 갑자기 아스널 진영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스널 팬들 앞에 무릎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데바요르는 "아스널 팬들이 내 가족에 대한 험담을 퍼부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아스널 팬들과 아데바요르는 여전히 앙숙 관계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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