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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넘버9' 퇴조의 시작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7-08 07:36


ⓒAFPBBNews = News1

'넘버9'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

'9번'은 스트라이커를 상징하는 번호다. 축구는 골로 말하는 스포츠다. 득점을 책임지는 스트라이커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축구사를 수놓은 별들의 대부분이 스트라이커였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기술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육성될 수 있는 것과 달리 문전 앞에서 골을 넣는 동물적 감각은 가르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몸값도 가장 비쌌다.

하지만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스트라이커가 보이질 않는다. 전통파 스트라이커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 하다. 스트라이커의 전유물이었던 득점 순위를 보자. 6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를 비롯해, 네이마르(브라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토마스 뮐러(독일·이상 4골) 등이 포진한 선두권에 스트라이커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3골로 제 몫을 해준 프랑스의 카림 벤제마와 네덜란드의 로빈 판 페르시 정도가 체면치례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벤제마와 판 페르시 역시 과거의 스트라이커상과는 거리가 있다. 브라질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프레드와 아르헨티나의 '넘버9' 곤살로 이과인은 단 1골만을 넣었을 뿐이다. 세르히오 아게로(아르헨티나), 디에고 코스타(스페인),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등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은 스트라이커들이 무득점의 수모를 겪었다.

이같은 넘버9의 종말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투톱에서 원톱으로 변화하던 흐름은 '제로톱'으로 이어졌다. 페널티박스 안에 머물던 타깃형 스트라이커 대신 '네오 포워드'로 불리는 만능형 공격수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상 미드필더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는 메시나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골을 만들어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네오 포워드'의 선두주자다. 이들은 한시즌에 60골 이상을 넣으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한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역시 전통적인 '넘버9' 유형은 아니다. 독일의 유일한 정통 스트라이커인 미로슬라프 클로제 역시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위력적인 모습보다는 미드필더와의 연계플레이에서 더 많은 골을 얻었다.

넘버9의 퇴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공격형태의 변화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공격전술은 단연 역습이다. 앞선에서 강한 압박으로 볼을 뺏어낸 뒤 수비 뒷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해 골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트라이커가 만든 공간을 활용해 뒤로 돌아들어가는 2선 공격수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부분 전술에서도 변화가 있다. 측면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과거 윙어는 돌파 후 크로스를 주임무로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측면에서 풀백과 센터백 사이를 파고드는 '커트인'과 골라인을 타고 들어가 짧게 내주는 '커트백' 형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설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다. 브라질의 골칫거리인 '원톱' 프레드의 부진은 개인의 컨디션 보다는 전술적 영향 탓이 크다.

이같은 흐름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연계력, 결정력, 전술소화력 등을 모두 갖춘 공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 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전술 역시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흐름을 그대로 유지, 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이커의 '9번' 대신 호날두로 대변되는 '7번(측면 공격수)'과 메시로 대표되는 '10번(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의 시대가 심화된 셈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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