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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가나전 참패, 어쩌다 '4골'이나 내줬나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4-06-11 11:35



남아공월드컵 8강권 팀임을 돌아봤을 때, 10일(한국시각) 만난 가나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다. 뛰어난 개인 기량으로 번뜩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중원에서의 볼 소유에 실수가 있었고 골키퍼를 비롯한 수비 진영에서의 볼처리도 깔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홍명보호의 ?수비 문이 활짝 열리고, 4골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회 개막을 사흘 앞두고 치른 최종 평가전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플레이는 냉정히 말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설 레벨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튀니지전(0-1 패)에서도 실점 장면 외 몇 차례의 수비 실수가 나왔다. 공간을 선점하지 못해 상대의 패스 흐름을 그대로 살려줬고, 본래 진영을 이탈해 수비에 나선 동료의 공간을 커버해주지도 못했다. 중앙 수비와 오른쪽 측면 수비를 바꿔 내세운 가나전의 플랫 4는 그나마 남아 있던 응집력까지 모두 앗아갔다. 그간의 경기를 돌아봤을 때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들임에도 경기장 안팎의 여러 요소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 예방 주사를 맞은 효과가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전반 10분 만에 첫 골을 내줬다. 곽태휘가 측면으로 나오는 순간 김창수, 한국영, 기성용의 추격이 이어졌지만 루트 차단엔 실패했다(①). 예측하고 판단하는 속도, 실제 뛰는 속도보다는 치명적인 백패스 실수를 탓할 장면이었다. 반대편에서 커버를 들어오는 이들이 몸을 살짝 돌려 공격수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을 터. 더욱이 속도를 달고 전진하는 가나와 후퇴하는 홍명보호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놓이게 됐고, 역동작에 걸리며 지독하게 꼬였다(②). 측면 깊숙한 지점에서 방향을 꺾는 크로스가 수비 숫자에 상관없이 까다로운 것도 이 때문인데, 튀니지전에서도 이미 한 방향으로 쏠린 김영권을 돕지 못한 장면이 연출됐다.

백 패스 하나에 최종 평가전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이후 김창수가 평상심을 찾을 수 있느냐, 더불어 옆에 배치된 곽태휘가 리딩으로 수비를 정상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A매치를 9개월이나 쉬었고, 올 시즌 소속팀에서 5경기 190여 분을 뛴 게 전부인 김창수의 후유증은 심했다. ?곽태휘와의 수비 분담에서는 동선이 겹쳤고, 이청용과의 측면 연계에서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몇몇 장면은 단순히 몸 상태만을 탓할 수 없는 부분으로 발을 맞춰보지 않은, 급조된 조합의 느낌이 많이 냈다. 전반 종료 무렵 곽태휘가 넘어지는 장면에서는 기성용과 한국영이 주심을 보는 동안, 기안이 유유히 전진해 추가골까지 뽑아낸다.


김창수, 곽태휘가 나란히 교체된 뒤 곧바로 세 번째 실점이 나온다. 이용이 로빙 패스를 견제하기 위해 측면으로 빠진 순간, 중앙엔 김영권-홍정호와 상대 공격수 한 명이 위치했다. 측면 수비가 중앙 수비에서 멀어질 때 그 사이 공간을 인지하고 메우는 것이 기본적인 수비 방법. 이를 커버하는 과정에서 한국영이 벗겨졌고(타이밍도 늦은 감이 있다), 다음 패스가 기성용을 통과하는 시점엔 김영권은 플랫 4의 라인에서 아래로 처져 앞 공간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 상대의 슈팅이 워낙 좋긴 했지만, 수비 진영을 더 촘촘히 나누고 할당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여기에 종료 직전 측면 크로스 과정에서 한 골을 더 헌납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플랫 4만을 탓할 수 없는 4실점이었다. 전반전 2실점은 개인의 실수를 꼬집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인 수비 조직은 지난 두 경기에서 모두 엉망이었다. 2009 이집트 U-20 월드컵부터 홍명보 감독과 함께한 모 선수는 "아프리카나 남미 팀은 윗선에서부터 거칠게 다뤄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지 못하도록 지시 받았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브라질전에서 중앙선을 갓 넘은 네이마르를 윗선에서부터 강하게 다룬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터. 이는 최전방-최후방 라인을 30m 이내로 바짝 좁혀 강력한 블록을 형성하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피치 곳곳을 옥죄지 못하면 절대 불가능하다. 튀니지전, 가나전 모두 그런 모습은 없었다.

상대 공격진이 드나드는 지점은 중앙 수비의 전진만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영이 볼을 예측하며 커팅하려 해도, 파트너 기성용과의 거리가 멀어지며 주효한 수비를 끌어내기도 어려웠다. 소속팀에서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뛰며 수비 범위와 접근 속도를 의식하는 게 기성용에게도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볼이 끊기고 시작되는 역습은 1차 저지선이 될 기성용-한국영의 도움 없이는 늘 어려움이 따른다. 더불어 앞선 원톱과 2선 공격진이 전방 압박의 효과를 거의 내지 못하며 수비 과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무리하게 전진해 앞선 4명, 뒷선 6명으로 쪼개지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

활짝 열린 뒷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 하고 브라질로 떠나게 됐다. 먼 미래를 보는 게 아닌, 조별리그 3경기 단기전에서의 성적으로 평가받는 무대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압도할 상대가 없는 상황, 탄탄한 수비력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부디 0-4 참패가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세 번째 실점 뒤 교체 선수가 들어오며 잠깐 나왔던 '각성의 수비력'이 본 무대에서는 90분 내내 펼쳐지길 희망한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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