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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부일체] ⑫정성룡의 아버지같은 스승 "많이 먹게 해달라는..."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5-27 07:34


2002년 전국체전에서 정성룡은 제주 선발의 일원으로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 검은색 옷이 정성룡. 사진제공=정성룡

2010년 5월 24일. 설동식 서귀포고 감독은 TV 앞에 앉았다. 일본 사이타마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일본의 친선경기를 틀었다. 카메라는 경기를 앞두고 입장을 준비하고 있는 양 팀 선수들에게 향했다. 순간 설 감독은 숨이 멎는듯 했다. 황급하게 TV를 껐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소주 한잔하자." 지인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전에 열리는 대표팀의 친선경기를 보지 않을 참이냐고 물었다. 설 감독은 한숨을 내신 뒤 말했다. "도저히 못 보겠어. 정성룡이가 선발로 나왔어. 경기보다가 가슴이 떨려서 쓰러질 것 같아." 그날 설 감독은 경기를 보지 않고 서귀포 앞바다를 보며 소주잔만 기울였다.


학생 선수 시절 동료들과 고기를 앞에 두고 한 컷. 왼쪽 맨 앞이 정성룡. 사진제공=정성룡
아버지의 유언

설 감독은 정성룡의 고교 시절 은사다. 보통의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면 경기를 지켜보며 "쟤가 내 제자라우"라며 목청을 높이며 자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 감독은 달랐다. 자랑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행여나 제자가 실수할까봐 경기도 지켜보지 못했다. 한-일전이 끝난 다음날 정성룡이 무실점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재방송을 봤다.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보는 내내 조바심이 앞섰다. 설 감독에게 정성룡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설 감독이 정성룡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이었다. 경기도 광주중 3학년 골키퍼로 활약하던 정성룡을 서귀포고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입학 절차를 다 마친 뒤 설 감독은 경기도 광주에서 정성룡의 아버지와 단 둘이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정성룡의 아버지는 설 감독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우리 성룡이 많이만 먹게 해주세요. 형편이 시원찮아서 밥도 제대로 못 먹였어요. 제주도는 먹을 것도 많으니까 배불리 먹게만 해주세요." 설 감독은 부탁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대개 "훌륭한 선수로 만들어달라"거나 "대학에는 꼭 보내달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 감독은 '많이 먹게 해달라'는 정성룡 아버지의 부탁을 가슴에 품고 서귀포로 돌아왔다.

유별난 부탁은 결국 유언이 됐다. 술자리 뒤 얼마 되지 않아 정성룡의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설 감독은 장례식을 마치고 서귀포로 돌아온 정성룡을 불렀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성룡아.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을 거야"라고만 했다. 정성룡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때부터 설 감독은 정성룡의 '스승이자 아버지'가 됐다.

설 감독은 정성룡의 합숙비를 면제해 줬다. 당시 정성룡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한달 40만원 가량의 합숙비는 큰 부담이었다. 설 감독은 정성룡에게 "너가 좋은 선수로 성장한 뒤 갚으면 된다.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스승의 도움을 받은 정성룡은 실력을 키웠다. 청소년대표급으로 성장한 정성룡은 K-리그가 주목하는 차세대 골키퍼가 됐다. 2003년 정성룡은 서귀포고 졸업과 동시에 포항에 입단했다. 제주도를 떠나는 날 정성룡은 설 감독과 만났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버지같은 은혜 꼭 보답할게요."


초등학교 시절 정성룡. 사진제공=정성룡
선택의 순간

2005년 프로 3년차 정성룡은 힘들었다. 2003년 입단 당시부터 기회가 없었다. 포항에는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시즌동안 1군 경기에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차기석에게 밀렸다. 2005년 중반 정성룡은 입대를 고민했다. 좀처럼 답을 내리지 못했다. 설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룡아. 입대를 고민하는 것도 이해한다. 입대는 분명 또 다른 방법이 될 거야. 하지만 아직 너는 젊어. 일단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 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이 한 마디에 정성룡은 입대 대신 팀잔류를 선택했다. 2006년 서광이 비추었다. 김병지가 서울로 이적했다. 서귀포고 시절 한번씩 정성룡을 지도했던 김성수 코치가 포항에 합류했다. 2006년 정성룡은 입단동기 신화용과 함께 번갈아 포항의 골문을 맡았다.


2007년 초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정성룡의 가능성을 알아본 K-리그 구단들이 이적을 제의했다. 정성룡도 고민에 빠졌다. 신화용과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이적을 제의한 구단들은 모두 주전 자리를 보장했다. 설 감독에게 SOS를 쳤다. 설 감독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프로라면 돈을 무시할 수는 없을거야. 그래도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면 안되겠지. 포항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너도 없었을거야." 1년 잔류를 선택한 정성룡은 그 해 포항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포항과의 의리를 지킨 정성룡은 2008년 막대한 이적료를 친정팀에 안기며 성남으로 이적했다. 2010년 성남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이끈 정성룡은 2011년 수원으로 이적, 든든하게 골문을 지키고 있다. 선택의 순간마다 정성룡의 뒤에는 조언자 설 감독이 있었다.


설동식 서귀고 감독. 사진제공=설동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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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믿어라

지난해말 정성룡에게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시즌 말 난조에 빠졌다. 팬들과 언론은 정성룡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 때 설 감독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잘 헤쳐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시즌이 끝나고 정성룡이 가족과 함께 서귀포를 찾았다. 그제서야 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성룡아. 마음 조급하게 갖지 말자. 누구나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비켜주어야할 자리야. 그렇다고 너가 못한 것도 아니야. 경쟁은 언제나 있을 수 밖에 없어. 내가 보기에 너는 훨씬 더 기량이 좋아졌어. 자신감을 가지고 하던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너 자신을 믿어라."

칭찬은 정성룡을 춤추게 했다. 3월 그리스전에서 선발로 나선 정성룡은 연이은 선방쇼로 무실점 승리(2대0)를 이끌었다. 그리스전이 끝나고 귀국한 정성룡은 설 감독에게 전화했다. "감독님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이제는 앞만 보고 갈 겁니다." 이 말은 들은 설 감독은 이번 월드컵만큼은 편하게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들같은 정성룡을 믿고 즐기기로 했다.

"누가 뭐라든지 성룡이는 제게 한국 최고의 골키퍼에요. 월드컵에 나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이제는 마음을 졸이기보다 성룡이를 믿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할 거에요."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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