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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검사 받을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니들은 자식 없니? "
그러나 스승인 감독들이 구단의 이해와 성적지상주의 속에 간과한 것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성별도, 축구도, 성적도 아니다. 15년 가까이 여자축구 그라운드를 누벼온 한 선수의 인권이다. 감독들은 선수이자 제자인 박은선의 프라이버시를 논의함에 있어 내용과 절차 모든 부분에서 신중하고 세심했어야 한다. 외모와 목소리, 기술력만으로 성을 의심하고, 감독회의에서 이를 문제 삼아, 한장의 팩스 메모로 성별 논란을 제기하고, 퇴출을 넘어 리그 보이콧까지 거론한 부분은 경솔했다. 축구는 팀플레이다. 한때 국가대표로 뛰었던 에이스의 선수생명과 여자로서의 운명을 '저잣거리 가십'으로 치부되게 한 책임으로부터 각구단 감독들도, 구단도, 연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성별 논란이 백일하에 공개됐다. 성별논란, 퇴출에 이어 성별검사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협회는 6일 "여자축구연맹이 서울시청에 선수 성별 확인검사를 요청했다. 결과가 나오면 협회를 통해 FIFA에 질의할 수도 있다.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같다"고 했다. "20세 이하 월드컵 등에 출전한 박은선의 성별검사 공식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도 했다. 은밀하고 조심스러워야 할 이 모든 절차와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성별검사 결과 박은선이 '여자'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멀쩡한 여자선수를 보이시하고 공 좀 잘찬다고 남자로 의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혹이 제기되는 '보이시'한 모든 여자선수에 대한 성별검사를 실시할 것인가? 6개 구단 감독들이 의혹대로 '남성'으로 판명된다 해도 문제다. 박은선에게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 대한민국과 여자축구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태극마크까지 달아준 여자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이 될 것이다.
감독도, 연맹도, 협회도 절차만을 이야기할 뿐, 당사자인 여자선수의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박은선의 의사 역시 고려되지 않고 있다. 박은선은 SNS를 통해 '성별 검사도 한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월드컵 때 올림픽 때도 받아서 경기출전하고 다했는데, 그때도 정말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네요'라고 썼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한 여자축구 선수가 졸지에 전국민의 흥밋거리,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상처받은 박은선의 SNS 격정 토로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떻게 만든 제 자신인데 얼마나 노력해서 얻은 건데 더 이상 포기 안하렵니다. 니들은 자식 없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랑 이 소식 들은 우리 엄마랑 우리 언니 오빠는 어떨거 같니? 피눈물 흘릴 거다. 지켜봐라. 안 무너진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