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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논란' 축구보다,성적보다 중요한 '선수인권'유감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11-06 16:54 | 최종수정 2013-11-07 07:40



"성별검사 받을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니들은 자식 없니? "

성별 논란에 휩싸인 여자축구 스타 박은선(27·서울시청)이 6일 새벽 자신의 SNS를 통해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5일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6개구단 감독들이 때늦은 성별논란을 제기하며, 내년 시즌 퇴출을 결의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직후다. '박은선'이라는 이름 세글자가 이틀 내내 각 포털 실시간 검색창을 뜨겁게 달궜다. WK-리그에서 8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고, 정규리그 최다 19골로 득점왕에 오를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폭발적인 관심이다. 대중은 스물일곱 여자축구선수의 성별에 뜨거운 관심을 쏟아냈다. 극도로 침체됐던 여자축구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순간이다.

올시즌 박은선의 활약은 드라마틱했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만년 중하위권 서울시청이 사상 첫 WK-리그 준우승, 전국체전 우승 신화를 썼다. 박은선 개인에게도 그간의 방황을 접고 축구에 전념해 의미있는 성과를 일군 뜻깊은 한해였다. 시즌이 끝난지 채 한달도 안돼 해묵은 '성별논란' '퇴출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스승인 감독들이 구단의 이해와 성적지상주의 속에 간과한 것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성별도, 축구도, 성적도 아니다. 15년 가까이 여자축구 그라운드를 누벼온 한 선수의 인권이다. 감독들은 선수이자 제자인 박은선의 프라이버시를 논의함에 있어 내용과 절차 모든 부분에서 신중하고 세심했어야 한다. 외모와 목소리, 기술력만으로 성을 의심하고, 감독회의에서 이를 문제 삼아, 한장의 팩스 메모로 성별 논란을 제기하고, 퇴출을 넘어 리그 보이콧까지 거론한 부분은 경솔했다. 축구는 팀플레이다. 한때 국가대표로 뛰었던 에이스의 선수생명과 여자로서의 운명을 '저잣거리 가십'으로 치부되게 한 책임으로부터 각구단 감독들도, 구단도, 연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성별 논란이 백일하에 공개됐다. 성별논란, 퇴출에 이어 성별검사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협회는 6일 "여자축구연맹이 서울시청에 선수 성별 확인검사를 요청했다. 결과가 나오면 협회를 통해 FIFA에 질의할 수도 있다.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같다"고 했다. "20세 이하 월드컵 등에 출전한 박은선의 성별검사 공식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도 했다. 은밀하고 조심스러워야 할 이 모든 절차와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성별검사 결과 박은선이 '여자'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멀쩡한 여자선수를 보이시하고 공 좀 잘찬다고 남자로 의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혹이 제기되는 '보이시'한 모든 여자선수에 대한 성별검사를 실시할 것인가? 6개 구단 감독들이 의혹대로 '남성'으로 판명된다 해도 문제다. 박은선에게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 대한민국과 여자축구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태극마크까지 달아준 여자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이 될 것이다.

감독도, 연맹도, 협회도 절차만을 이야기할 뿐, 당사자인 여자선수의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박은선의 의사 역시 고려되지 않고 있다. 박은선은 SNS를 통해 '성별 검사도 한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월드컵 때 올림픽 때도 받아서 경기출전하고 다했는데, 그때도 정말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네요'라고 썼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한 여자축구 선수가 졸지에 전국민의 흥밋거리,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상처받은 박은선의 SNS 격정 토로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떻게 만든 제 자신인데 얼마나 노력해서 얻은 건데 더 이상 포기 안하렵니다. 니들은 자식 없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랑 이 소식 들은 우리 엄마랑 우리 언니 오빠는 어떨거 같니? 피눈물 흘릴 거다. 지켜봐라. 안 무너진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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