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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뜨거웠던 한-일전 식힌 붉은악마

기사입력 2013-07-28 21:25 | 최종수정 2013-07-28 22:35

[포토] 붉은 악마
2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013 동아시아컵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붉은 악마들이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대형 걸개그림으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7.28.

장맛비가 대지를 적신 28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감정의 골은 깊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그라운드가 현실이었고, 역사였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자 붉은색 옷과 우비를 입은 팬들이 하나둘씩 관중석을 채웠다. 표정은 비장했다. 축제보다는 승리가 절실해보였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로 촉발된 역사문제는 한-일전을 다시 뜨겁게 했다. 2000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은 말그대로 전쟁이었다.

전날 태극낭자들과 북한이 불을 지폈다. 북한 선수단은 여자 한-일전에서 한국을 열심히 응원했다. 북한의 우승을 위해서였지만, 일본에게만은 지면 안된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지소연의 골이 터지는 순간 북한은 환호했다. 한국의 2대1 승리로 끝이나자 남북선수단은 함께 환희를 누렸다. 한민족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하나가되자 '세계최강' 일본은 고개를 떨궜다.

남자 한-일전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동아시안컵은 동아시아 축구를 함께 발전시킨다는 장으로 출발했지만, 이날 한-일전에서 화합은 없었다. 양 국의 치열한 신경전이 경기장 안팎에서 펼쳐졌다. 붉은악마의 플래카드가 포문을 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담긴 천막이 출렁였다. 일본을 향한 붉은악마의 일침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플래카드는 정확히 울트라니폰의 정면에 자리했다. 그러자 일본 서포터스 울트라니폰이 욱일승천기를 꺼내들었다. 외교문제를 의식한 축구협회 관계자들만 분주해졌다. 한국팬들의 지적에 욱일승천기를 즉각 수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측에서 반발했다. 일본축구협회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플래카드를 FIFA에 제소한다며 으름장을 놨다. 전반 내내 플래카드를 사수하기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플래카드는 수거됐고, 붉은악마는 항의의 표시로 응원보이콧을 선언했다.

전반 경기장을 뜨겁게 달군 붉은악마의 함성이 사라지자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팬들이 산발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파괴력이 떨어졌다. 붉은악마는 손을 놓았다. 리더를 잃은 한국은 조직적으로 움직인 울트라니폰의 응원에 밀렸다. 붉은악마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묘한 문제는 경기 후에도 논의할 수 있다. 경기장에서 응원을 포기한 서포터스는 더이상 서포터스가 아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팬들과 선수단에 전해졌다.

한편, 이날 경기가 열린 잠실벌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날 잠실벌에는 한-일전 외에도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둔 두산 베어스와 LG트윈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진행됐다. 축구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이 동시에 열린 것이다. 경기 시작 전 잠실벌은 거대한 주차장같았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잠실야구장에 진입하기 위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주차장 진입 3km를 앞두고 40여분 이상이 소요됐다. 주차장에 진입해서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차장 여기저기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2호선 종합운동장역 주변도 소란스럽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축구와 야구팬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종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역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두 경기장을 합쳐 무려 6만8378명의 관중이 잠실벌을 뒤흔들었다. 비만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팬들이 운집할 수 있었다. 잠실벌은 스포츠 공화국이었다.


잠실=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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