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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지난 20년 역사는 현대가(家)의 치세였다. 1993년 제47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정몽준 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2008년 12월까지 4선을 하면서 절대왕정을 구축했다. 51대 회장직을 역임한 조중연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가신, 일명 'MJ(정 명예회장의 알파벳 약칭)계'였다. 조 회장 취임 뒤에도 정 명예회장은 '상왕'으로 불렸다. 조 회장의 4년 치세는 그림자에 가릴 수밖에 없었다. 동서고금에 영원한 왕조는 없었다. 조 회장은 4년 간 잇단 실정으로 현대가의 절대왕정 체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갔다. 승부수가 필요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51)은 MJ계가 던진 회심의 카드다.
정 회장 출마를 전후해 여론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경이다. 축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MJ계가 내세운 후보라는 '프리미엄'이 컸다. 그러나 이는 20년 간 축구계를 지배해 온 현대가의 세습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다. 이에 대 정 회장은 "대의원들 투표를 통해 (협회장) 후보를 선출하고 있다. 회장 선출 방식인데 세습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MJ와는 선을 긋는 데는 소극적이다. "MJ가 과거 (축구협회장으로 활동하던) 16년 간 월드컵 유치 등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MJ 이후 소통이 안되는게 문제였다. MJ가 축구협회 일을 그만두신 다음 한국 축구 국제 위상이 떨어지지 않았나. 내가 당선된다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MJ계'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찾은 돌파구는 소통이다. 현 상황을 보면 당선이 되더라도 축구계의 야권으로 지칭되는 세력과의 분열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번 선거전에서도 권오갑 실업축구연맹 회장을 비롯해 안기헌 프로연맹 사무총장, 오규상 여자축구연맹 회장 등 '범 MJ계'와 함께 여론 수렴에 힘을 모으고 있는 이유다. 정 회장은 "분열의 원인은 소통이 덜 돼서 그렇지 않나. 축구 각계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소통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의 상호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 및 3000억원의 예산 확보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7일 출마 기자회견 당시 "연맹 총재를 맡아보니 연맹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적이었다. TV중계권 협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협회 예산이 1100억원이라 거대 체육단체라는 말이 있는데, 협회예산은 1200억원도 모자라는 것이다. 협회 예산을 2000억, 3000억원으로 키우는게 내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랜기간 기업을 이끌던 노하우로 축구협회를 '경영'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밖에 국제경쟁력과 축구문화, 인프라, 일자리 창출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축구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게 약점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