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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에 묻혔지만 14개월 전의 얘기를 다시 꺼내자 금세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현대가 축구 권력의 가장 큰 피해자인 그는 흘러가고 있는 선거판이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2011년 12월 기술위원회 논의없이 수뇌부의 밀실 야합으로 경질됐다. 설 곳이 없었다. 지난 연말 귀향을 선택했다. 1974년 대학(연세대)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이후 38년 만이다.
조광래 전 A대표팀 감독(59)을 17일 경남 진주에서 만났다. 14개월 전 그 날의 악몽은 여전했다. "그 때 그 심정은…", 쉼표는 길었다. "내가 왜 대표팀 감독을 맡았는지 후회했다. 창피했고, 아팠다." 고개를 숙였다. 아픔이 컸다. 지난해 초 칭다오를 포함해 중국 클럽의 러브콜을 받았다. 평생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았지만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했다. 조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그만두고 지도자를 계속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섰다. 그래서 못갔다. 아무 팀도 맡고 싶은 팀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질긴 악연의 끈은 진행형이다. 그는 현재 축구협회와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칼은 그들의 몫이지만 계약은 계약이다. 지난해 1월부터 계약기간인 7월까지의 잔여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잔여 임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축구협회는 이제서야 협의할 생각이 있다고 짧게 답신했다. 그러나 알맹이는 없었다. 조 감독은 구체적으로 협의할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18일까지 축구협회의 답변을 다시 기다려 볼 참이다. 반응이 없을 경우 21일 법적 소송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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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은 자신의 잔여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임금 얘기가 나오자 '왜 줘'라고 얘기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문제다." 그리고 "차기 회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아물것 같지 않던 조 감독의 상처는 아이들의 웃음과 축구를 향한 열정에 서서히 치유되고 있다. 조 감독은 지난해 11월 진주에서 '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구교실'을 열었다. 축구교실을 연지 3개월, 그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새삼 지도자로 한 번 더 눈을 뜨고 있다." 모처럼 해맑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축구계의 소통과 화합을 물었다. 4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도 최대 이슈다. "그라운드에선 여야가 없다. 그것을 논하는 자체가 잘못됐다. 다만 이제는 젊고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분들이 협회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구협회장이 축구에 대한 깊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깊이를 갖고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소통과 화합이 이뤄진다. 사람이 문제다. 생각의 창의성을 불어넣으면 모든 것이 잘 정리될 것이다."
한 시간여에 걸친 인터뷰가 끝이 났다. 자리를 떠나며 그는 기자를 향해 "두 번 다시 나같은 지도자가 나오면 안된다"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 축구를 향한 이 시대의 울림이었다.
진주=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