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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디올라의 깜짝 독일행, 유럽축구 권력이동의 신호탄?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1-18 08:25



유럽챔피언스리그(UCL) 우승팀을 보면 '유럽 축구 주기론'이라는 흐름을 볼 수 있다.

UCL 성적은 자본력에 의해 결정된다. UCL 성적은 수입을 만들고, 수입으로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성적으로 보상되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사회과학적 용어인 경제적 환원주의를 축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독일과 잉글랜드, 1990년대는 이탈리아가 UCL에서 강세를 보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스페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단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시대다. EPL은 2004~2005시즌부터 무려 5시즌 연속으로 UCL 결승 진출팀을 배출했다. EPL의 성공은 거대자본이 유입된 시점과 일치한다. 2003년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의해 인수된 첼시는 축구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천문학적인 돈을 쓴 첼시는 곧바로 EPL과 UCL의 강호로 떠올랐다. 첼시의 성공에 고무된 EPL 클럽들은 경쟁적으로 외국인 자본을 받아들였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이들은 외국인 선수와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고, 이는 곧 리그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유럽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른 잉글랜드는 천문학적 해외중계권료를 벌어들이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맨유와 첼시가 결승에서 만난 2007~2008시즌은 EPL의 위세가 절정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EPL의 강세는 최근들어 한풀 꺾이고 있다.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에는 단 두 팀만을 UCL 16강에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호셉 과르디올라 전 바르셀로나 감독이 EPL클럽들의 구애를 뒤로하고 독일행을 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이에른 뮌헨은 17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올 시즌이 끝난 뒤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뒤를 이어 2016년까지 팀을 지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2008년부터 4년 간 바르셀로나를 이끌면서 UCL 2회, 프리메라리가 3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 뉴욕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그에게 숱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정중동 행보를 하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근 참석한 2012년 국제축구연맹(FIFA) 시상식에서 "감독직을 원한다"며 복귀를 선언했다. 이에 영국 언론들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시티 혹은 첼시 지휘봉을 잡게 될 것으로 점쳐왔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제시하며 과르디올라 감독을 유혹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택은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독일행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장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미 독일 분데스리가가 수년 내 유럽 최고의 리그로 비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2011~2012시즌부터 시행한 'UEFA 파이낸셜 페어 플레이 룰(FFP)'의 도입 때문이다. EPL은 엄청난 자본으로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EPL은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0%에 달한다. FFP는 쉽게 말해 클럽이 버는 돈 이내에서만 자금을 사용해야한다는 제도다. 이를 어길 경우 UEFA가 주관하는 대회 출전이 금지된다. 돈이라면 물쓰듯 쓰는 맨시티조차 숱한 소문과 달리 이적시장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FFP의 도입으로 가장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리그가 바로 분데스리가다. 분데스리가는 재정적으로 가장 안정된 리그다. 바르셀로나, 맨유 등 유럽의 명문클럽들이 적자에 시달리는 동안 바이에른 뮌헨은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분데스리가는 재정 안정도를 위해 일찌감치 라이센싱 시스템을 도입했다. 재정상태와 시설 문제, 행정력, 법률문제 등에 대해 합격점을 받은 클럽만이 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 독일은 기본적으로 큰 규모의 경기장과 충성도 높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입장료는 구단의 가장 큰 수익원 중 하나다. EPL클럽들이 앞다퉈 구장을 증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스널이 3만여명에 불과했던 하이버리를 떠나 6만여명의 에미리츠스타디움을 지은 이유는 6만5000여명의 올드트래포드를 홈으로 하는 맨유에 수익면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는 10년 연속으로 유럽 리그 중 경기 평균 관중수 1위를 차지했다.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AC밀란 부회장은 "나는 과르디올라의 독일행에 놀라지 않았다"며 "독일 축구는 독일의 경제력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경기력 면에서도 어린 유망주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데스리가는 지난 2002년 이후 유스 발굴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독일 축구 협회와 리그 연맹은 분데스리가 1부 리그나 2부 리그에 참여하기 원하는 모든 클럽들에 한해 반드시 유스 아카데미를 운영토록 지시했다. 마리오 괴체(도르트문트), 토니 크로스(바이에른 뮌헨) 등 성과물이 나오고 있다. 유스시스템을 강조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구미에 딱 맞는 리그다.

올시즌 UCL에 참가한 3개의 분데스리가 클럽 모두 16강에 올랐다. 분위기를 탄 분데스리가에 현대 축구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인 과르디올라가 간다는 사실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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