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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안정환'에 안녕을 고하며 눈물로 은퇴한 뒤 1주일 뒤. 안정환은 여전히 바쁘다.
인터뷰를 위해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도 "요즘 더 바빠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10대1 인터뷰' 손님으로 안정환을 모신다고 '공고'를 내자 반응들이 뜨거웠다. 14년 프로생활과 20여년 축구선수 생활을 함께 한 동료와 지도자들의 궁금증 행진은 그가 은퇴했어도 여전히 진행형. 겹치는 질문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송곳'같은 이야기만 모았다.
-정환아, 일본에서 함께 생활도 했고, 지도자로 부딪혀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진짜 지도자 생각 없냐.(유상철 대전 감독)
어이쿠 형님. 형이랑은 같은 팀서 우승도 경험했죠. 언젠가 정말 축구가 그립다면 돌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니에요. 유소년축구는 준비중이지만 프로 지도자는 제가 그릇도 아니고….
-은퇴후 연예계 진출 계획은?(전북 김상식)
콜은 많이 오는데 지금은 생각이 없어.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고. 그건 그렇고. 진짜 상식이 너다운 질문을 하는구나.
-부산에서 같이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은퇴를 하다니 아쉽다. 참 많이 울던데, 사나이 눈물의 의미가 궁금하다. (김호곤 울산 감독)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가슴에 맺혔던 것이 흘러 나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 같네요. 아쉬움 눈물일 수도 있죠. 지금도 사실 많이 한 나이죠.
-정환아, 너는 왜 나하고 저녁 먹을 때 한 얘기하고, 은퇴 기자회견 얘기가 다르니.(신태용 성남 감독)
(웃음)감독님, 물론 같이 하고 싶었죠. 미안하고 죄송스럽습니다. 오라고 하셨지만 결정을 쉽게 못 내리겠더라고요. 제가 성남 가서 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 자리에선 감독님에게 잘라 말씀드리지 못한 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팀 갔으면 죽일 놈 됐겠지만 은퇴했으니 큰 죄는 없는 것 아닌가요. 솔직히 저도 약간은 할 말이 생겼고. 아무쪼록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웃음).
-남아공 때 함께 해 정말 좋았습니다, 형님 축구선수 중 최고 미남, 인정하시나요.(상주 김형일)
아이, 그건 아니고, 운동장에서 잘해야 그사람이 멋져 보이고 잘나 보이는 거 같아. 난 내가 미남이라고 생각 안해. 물론, 약간 곱상하게 생겼기는 했지. 스포츠 선수 답지 않게 말이야.
-뭘 먹고 어떻게 관리하길래 피부가 그렇게 좋은 가요.(서울 최태욱)
아~놔, 사실 피부 안 좋은데. 근데, 넌 왜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냐. 그냥 깨끗이 씻고 잘 자면 돼. 이왕이면 우리 회사 로션도 바르고 말이야. 이게 정답 아냐? 하하
-몇 년전 중국 다롄 감독한테 제가 형 추천 많이 한 거 아시죠. 중국에서 저랑 같이 뛴 거 후회 하시나요. (전우근 상주 유소년팀 감독)
아니, 후회 없다. 내가 그 나이에 중국리그를 경험하고 많은 친구도 사귀고, 인생 경험도 많이 했다. 근데 네가 전화로 말할 때는 분명히 '부산보다 여건이 좋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막상 가 보니 아니더라고. 그렇다고 후배인 너한테 뭐라 하기도 그렇고. 정 미안하면 나중에 소주라도 한잔 사던가. ㅎㅎ
-한-일월드컵 4강으로 군면제가 됐지만 남자라면 군 이야기가 추억이지. 지금이라도 상주에 입대해서 나랑 같이 해볼 생각 없나? (박항서 상주 감독)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는 4주 현역을 마쳤기 때문에. 아, 무엇보다도 사병 월급으로는 두 아이 먹여 살리기 힘듭니다. 나중에 아들을 키워서 보내겠습니다. 하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왕성한 것은 형수님과의 금실 때문인가요.(인천 김남일)
아무래도 그런 것도 무시 못하겠지. 사실 아내가 요리를 좋아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잘 뛴 것 같아. 예전에는 잘 못 먹어서 운동을 오래 못했지만 요즘에는 약이나 보조식품도 좋은 거 많잖니. 근데 금실 부분은 말 못한다. 나만 간직할께.
-형, 왜 항상 목욕은 혼자 몰래 해요? 몸에 무슨 비밀 있어요? (인천 설기현)
어? 목욕 혼자 한 적 없는데, 야, 그리고. 기현아. 호텔 좁은 욕실서 혼자 목욕하지. 그럼 누구랑 같이 하냐. 프로 생활할 때도 호텔에서 자니 같이 목욕할 일이 없고. 작은 문신이 있긴 하지만 흉한 정도는 아니고. 아~. 파주NFC 지하 목욕탕 말이야? 그긴 추워 안 간다. 한번 내려 갔다가 얼어 죽는줄 알았다. 사실 내가 탕에 들어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말이야.
-긴 머리 스타일 말이에요. 언제부터 했어요? 파마 할인은 받아요? (울산 김영광)
부산 대우에 있을 때부터 머리가 길었는데 바빠서 자를 시간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지. 김주성 선배님 따라 머리를 길렀는데 그게 어떻게 하다보니 트레이드 마크가 되서 자를 수도 없고. 파마는 아는 미용실 사장님의 배려로 평생 공짜다(웃음). 영화배우 배용준씨랑 나, 이렇게 두 명만 공짜랜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 근데 6개월에 한번 정도 밖에 그 미용실에 못 가. 자주 안 가니 공짜인가?
-정환아, 대학 시절 말이야. 네가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온 적이 있지. 그때는 왜 그랬어?(강원 최성용 코치, 1년 선배)
숙소에서 도망쳤다가 잡혀와서 그랬죠. 맨날 선배들이 집합 걸고 때리고 하니까 숙소 이탈했다가 왔어요. 화가 난 코치 선생님이 머리 밀라고 해서 깎았죠. 그때는 많이 맞았어요. 지금은 추억이지만. 아무튼 그때는 머리카락 짧게 깎는 것이 가장 큰 벌이었죠.
-축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인가요(전북 이동국)
지금 생각해 보면 지우고 싶은 순간은 없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다 소중한 추억이고. 부상 당하고, 본의 아니게 무적신세 되고, 이태리 방출 됐을 때는 내 기억을 송두리째 지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인생 큰 자산이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골은요?(울산 곽태휘)
모든 골은 기억에 남지. 하지만 팬들이 많이 기억해주시는게 아무래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이지. 내가 기억하는 골보다는 팬들이 기억해주시는 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정환, 반가워. 딸(리원)이 예쁘게 자랐던데. 물론 우리딸보다는 덜하지만. 딸 잘 키우는 노하우 있나.(최용수 서울 감독)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아이들은 아내가 키우니. 형수님한테 잘 하세요. 형님은 딸과 많이 놀아주세요. 형님도 아시겠지만 집을 많이 비웠던게 지금도 미안합니다.
-형, 저도 사업을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혹시 축구지도자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요? (고종수 수원 코치)
아직 생각없다. 와이프가 사업 기반을 잡아놨기 때문에 도와줄 계획이야. 축구지도자?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아.
-은퇴 기자회견 때 기분이 짠 했습니다. 선수가 은퇴를 고민할 때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수원 오범석)
아무래도 진로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말이야. 지도자나 사업 등 여러가지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일 수도 있겠고.
-형, 여전히 보여줄 게 많은데 은퇴하는 진짜 이유가 뭐에요? (수원 정성룡)
하~ 아무래도 부담감 때문이겠지, 팬들은 잘 했을 때만 기억하시잖아. 또 뭔가를 보여줘야만 하고. 글쎄 몸도 그렇고, 지금이 떠날 때라고 생각했어.
-정환아, 너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데 남은 인생 어찌 살래?(전남 이운재)
일단, 아내가 하는 화장품 사업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저만 계속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아내한테 도움을 줘야 되는거 아닌가. 축구말고 다른 것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실패도, 성공도 있겠지만. 제 인생을 축구로만 채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 뒤에 유소년도 생각해 볼 참입니다.
-이제 선수가 아닌 축구인이잖아. 축구발전 기여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 (최만희 광주 감독)
제가 받은게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유소년 축구에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럽생활을 해보니 기초가 안 되어 있으면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되고. 메시 같은 선수도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좋은 선수가 됐죠. 유소년 축구가 강해져야 한국 축구도 발전한다는 생각입니다.
-선배님, 화보 촬영을 마니 하셨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부산 임상협)
특별한 건 없고. 여러번 많이 하다보니 생긴 것 같다. 축구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내가 연예인이 아니니 노하우, 뭐 이런거 가르쳐주긴 뭐 하고. 야, 근데 운동이나 열심히 해라. 그런 것 신경쓰지 말고. 알지. 축구선수는 볼 잘 차면 나머진 저절로 된다. 알지.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