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연이란 한치앞은 모른다고 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 프로무대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23일 열린 수원과 울산의 K-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울산 출신 수원 4인방 염기훈 이상호 오범석 오장은이 그랬다. 26일 포항과 울산이 펼치는 K-리그 플레이오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황선홍 포항 감독과 울산의 공격수 설기현이다.
얄궂은 인연이다. 2002년에는 친한 형, 동생이었다.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함께 써내려가며 서로의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2007년 전남 코치를 그만둔 황선홍은 설기현이 뛰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딩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황선홍은 선진 축구를 배우면서 동시에 설기현과 진한 우정도 나누었다.
하지만 설기현을 향한 포항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설기현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4월 23일 K-리그 7라운드 포항과 울산전이 열린 포항 스틸야드는 설기현을 비난하는 문구로 가득찼다. '설 떠나줘서 고맙다'는 플래카드는 약과였다. 연봉과 전지훈련비, 유니폼 재고 정신적 피해액 등을 합해 14억원을 배상하라는 '대금청구서'라는 플래카드도 있었다. 1만4000여 팬들은 설기현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비난당하는 설기현도, 그것을 지켜보는 황 감독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번 플레이오프 경기 역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포항 팬들은 설기현을 자극하는 야유를 준비할 태세다. 6강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포항과 만나고 싶다"던 설기현의 인터뷰가 포항 팬들의 적개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를 지켜보는 황 감독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설기현은 펄펄 날았다. 울산의 에이스인 설기현의 기량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포항 팬들의 압박이 내심 반갑다. 우정도 중요하지만 승부가 먼저인 프로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