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1년 된 거 어떻게 알았어?"
그랬다. 많은 이들이 조광래 축구에 취해, 혹은 승부조작으로 어지러운 K-리그에 쏠려 깜빡하고 있었지만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은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후인 지난해 7월 21일 조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했다. 허정무 전임 감독이 지휘봉을 놓고, 몇몇 후보가 고사한 가운데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7월 2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조 감독은 "정교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기술축구, 빠른 축구로 세계 축구를 따라잡겠다"고 했다.
만화축구? 이제 70%쯤 온 것 같다
조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포지션별, 선수별로 따로 주문사항을 전달했다. 선수들에게 그림을 그려가며, 한국축구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어야하는 지를 설명했다. 그는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를 원했다. 영리한 축구를 얘기했다. 스페인대표팀, FC바르셀로나가 펼치는, 정교한 패스를 중심으로 한 축구를 바랐다. 공격수는 공격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미드필드까지 내려와야 하고, 수비에도 가담해야 했다.
선수들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만화축구'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만화 속에서나 가능할법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축구가 패스 중심의 축구, 끊임없이 압박하고 움직이는 축구로 바뀐 것이다.
9승4무1패. 지난해 9월 7일 이란과의 친선경기에서 0대1로 진게 유일한 패배다.
조 감독은 "처음에 선수들이 뒤에서 불가능한 축구라고 얘기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수들이 감독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1년간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게 가장 큰 소득이다"고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축구가 70%쯤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
지난 1년간 대표팀 구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팀의 중심이었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를 은퇴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생각하고 있는 조 감독은 세대교체에 무게를 두고 젊은 선수를 테스트했다.
그럼 지난 1년간 가장 기량이 업그레이드된 선수는 누구일까. 조 감독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기성용(스코틀랜드 셀틱)을 얘기했다.
조 감독은 "취임 초기 기성용에게 미드필더로서 공격, 수비 하나만 신경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너무 예쁘게 공을 차려고 하지 마라고 일렀다. 반쪼가리 선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얘기까지 했다. 그런데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거칠게 상대를 압도하는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 감독의 눈에 비친 박주영(AS 모나코)과 차두리, 둘도 완전히 달라졌다. 조 감독은 "차두리는 스스로 공격적인 재능을 끌어냈고, 박주영은 최전방 공격수이지만 수비까지 가담한다. 둘 모두 새로운 축구에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
조 감독 체제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한국축구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쏟아진다. 한국축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조 감독은 아직 배가 고프다고 했다. 중앙 수비라인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상대의 변칙 공격에 취약하다고 했다.
조 감독은 "상대의 변칙 수비에 약점이 있다. 상대 수비라인에서 곧장 최전방으로 공이 연결될 때 우리 중앙 수비수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다.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공격이 전개될 때 당황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지난 1년간 우여곡절이 있었다. 구자철(독일 볼프스부르크) 김보경(일본 세레소 오사카) 등 젊은 선수를 놓고 올림픽대표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불협화음이 있었다. 조 감독은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선수 선발에 관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공식기자회견에서 월권이라며 질타했다.
조 감독은 "나도 원만하게 잘 가고 싶다. 하지만 대표 선수 선발이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는 걸 확실히 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