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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갑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60) 만큼 여러 직함을 갖고 바쁘게 사는 기업인이 있을까. 그는 굴지의 정유회사인 현대오일뱅크 사장이면서 프로축구 울산 현대와 내셔널리그 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씨름단이 소속된 (주)현대중공업 스포츠 대표이사다. 현대오일뱅크는 올시즌 K-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권 회장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한밤까지 숨가쁘게 돌아간다. 매주 토요일 경기도 판교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100세 노모를 찾아 뵙는 게 유일한 여유시간이다.
축구팀 운영? 돈 계산하면 못한다
2009년 실업연맹 회장에 취임한 권 회장은 곧장 승강제 관련 실무회의를 거쳐 지난해 세미나, 공청회를 열어 발동을 걸었다. 최근 프로축구연맹은 내년 리그 상위 12개 팀으로 2013년 1부 리그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밑그림을 그렸지만 아직 세부사안은 안갯속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현재 K2-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팀이 과연 1, 2부 리그에 올라올 수 있는 지 불확실하다. 또 지자체 단체장이 구단주인 시-도민구단들은 2부 리그로 떨어질 경우 팀 해체를 걱정한다.
권 회장은 국기나 다름없는 축구를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축구가 일본에 지거나 월드컵에 못간다고 생각해봐라. 야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 국민은 축구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도-시민구단이 돈만 생각한다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구단 운영하겠는가. 힘들어도 국가를 위해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는 권 회장에게 애국과 같은 의미였다.
권 회장은 K-리그 진입 장벽을 낮춰야 승강제가 원활히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하위 팀이 K-리그에 들어오려면 발전기금(40억원)을 내야 하는데, 이런 걸 따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 뭐든지 시대의 소명에 따라야 한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이 내셔널리그에 지원금 주는 걸 아까워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강제를 위해서라면 내셔널리그가 14개 팀에서 10개로 줄더라도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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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달간 K-리그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뿌리째 흔들렸다. 그런데 축구계 일각에서는 가담 정도나 자진 신고 여부에 따라 선처하자는 온정론이 나온다. 권 회장은 "법원에서 다양한 형량이 나오겠지만, 국민 정서에 맞게 일벌백계해야 하는 게 옳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다양한 승부조작 방지책이 나왔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권 회장은 교육에서 길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인성이 바로 서고, 정직하지 못한 일에 죄의식을 갖게 되며,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다. 한국 선수들은 초중고 내내 합숙하고 공만 차는 프로선수다. 운동에 매몰되다보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
권 회장은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마친 뒤 나머지 시간에 공을 차야 한다. 동독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땄는데, 훌륭한 나라였나. 어릴 때부터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정상적인 교육을 통해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권 회장은 이와 함께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경찰이 순찰을 돌면 범죄자들의 발이 묶인다. 그렇지만 경찰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해야 승부조작이 다시 발붙이지 못한다."
30억원을 내고 K-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권 회장은 "언론 노출 빈도를 보면 거의 본전을 뽑아가고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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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은 유소년 발전 기금 조성과 사외이사제 실시, 실업연맹의 사단법인화를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꼽았다. 실업연맹은 의사결정 구조를 스마트하게 바꾸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사회 구조를 바꾸고, 축구 마니아인 탤런트 최수종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모셨다. 최근 프로연맹도 실업연맹의 뒤를 따랐다. 실업연맹은 권 회장 취임 후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유소년 기금을 만들었고, 내년까지 5억원으로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또 내셔널리그 스폰서 금액을 기존 1억원 수준에서 5억~6억원으로 끌어올렸다.
기업인, 축구인으로서 그의 꿈, 목표는 무엇일까. 권 회장은 평소 자주 입에 올리는 '마을 이장' 얘기를 했다.
그는 "은퇴한 후 고향 마을에 내려가 이장을 하고 싶다. 이장이 되면 이장 중에 가장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마찬가지로 기름회사 사장 중에 가장 잘 하는 사장, 연맹 회장 중에서 가장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권 회장은 마라톤 마니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42.195km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 권 회장의 얼굴이 죽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했다. 지인들은 어차피 다 왔는데 마지막까지 왜 전력으로 뛰며 고생하느냐는 말을 한다. 권 회장은 "다른 사람보다 1초라도 빨리 들어오고 싶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웃었다.
매사에 치열하게 달려드는 그는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 술을 끝까지 먹는다. 직급을 떠나 최선을 다해야 상대에게 '당신이랑 관계를 좋게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