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출신 유상철 대전 감독이 대전에 와서 놀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23일 강원과의 데뷔전에서 작전지시를 하는 유 감독. 대전=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대전 감독 취임 축하 전화를 받을때마다 '축하한다'는 말 다음에는 항상 '힘들겠다'는 말이 붙더라구요."
유상철 대전 시티즌 신임 감독이 '힘들겠다'의 의미를 아는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 감독은 울산 현대, 일본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최고의 환경과 지원이 익숙하다. 그런 유 감독에게 '시민구단' 대전은 모든게 낯설다. 열악한 시설, 선수단을 흔드는 정치적 소문 등 프로답지 못한 환경에 놀라울 뿐이다.
유 감독은 현재 선수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대전 클럽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말이 좋아 클럽하우스지 부끄러울 정도다. 낙후된 전기 시설, 자주 고장나는 물탱크로 샤워를 하지 못한 것도 여러 번이다. 전용 구장이 없어 떠돌이 생활도 이력이 났다. 유 감독은 "중학교때 이후 이런 시설에서 처음 지내본다. 그때야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요즘 시대에 프로팀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부분도 갖춰지지 않았다"며 씁쓸히 말했다.
유 감독은 22일 염홍철 대전시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전용연습장과 클럽하우스 완공을 약속받았다. 몇 년간 반복된 단골 레파토리다. 대전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감독이 취임할 때마다 전용연습장과 클럽하우스를 완공하겠다는 약속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유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쉬고 먹고 자는 기본적인 것이 바탕이 돼야 한다. 내가 대전에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해결하겠다. 사퇴할 각오도 되어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유 감독이 놀란 것은 시설만이 아니다. 각오는 했지만, 더 많은 소문들이 대전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부분이 정치적인 싸움에 관한 것이다. 특히 일방적인 소통으로 유명한 김광희 사장과의 관계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 감독은 선을 확실히 그었다. 유 감독은 "지금 운동장, 숙소만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시장이나 사장을 만나겠지만, 주로 선수단과 함께 할 것이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경기력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내가 요청할 때는 나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해서다. 마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요한 선수 영입이나 경기력을 위해 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강하게 얘기할 것이다. 구단에서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감독에게 한 대전의 약속이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대전의 축구관계자는 "대전은 구체적 플랜 없이 현재 유 감독의 스타성에만 의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전은 '스타 출신' 유 감독의 힘으로 18경기만에 승리를 올렸다. 일단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산적해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또 찾아온다. 대전이 프로다워지기 위해 '진짜 프로'를 경험해 본 유 감독의 얘기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좋은 경기를 기대해야죠."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