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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마라톤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다. 독주다. 외로워 보이지만 나쁜 건 아니다. 당장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앞서 있는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나만의 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결승점에 도달한다. 그 순간,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드러누우면서도 풀코스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건강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최근 러닝에 빠졌다는 배우 권화운이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마라톤과 비슷하다. 스포츠조선이 최근 MBC 드라마 '용감무쌍 용수정'으로 9개월간의 일일극 대장정을 완주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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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에는 여유가 없어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유롭고 즐겁게 한다. 그랬더니 화면에서 새로운 표정이나, 감정, 연기적인 느낌이 바뀐 것 같다. 이전엔 잘해 보이려는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본인 색깔과 개성을 가지고, 순간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그게 힘을 뺐을 때 나오는 모습인 것 같다. 원래는 철저한 준비가 힘을 뺀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상황 속에 살아 있어야 진짜 즐길 수 있겠더라"며 변화한 연기 가치관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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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2024 JTBC 서울 마라톤에서 풀 마라톤에 도전, 3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는 '서브3'를 달성하기도 했다. 러닝을 시작한 지 고작 6개월 만의 성과다.
"서브3가 42.195km를 3시간 안에 들어오는 건데, 대한민국에는 엘리트 선수 포함해서 600명 밖에 없다. 연예계에는 저를 포함해서 두 명이라더라. 사실 서브3는 전력질주로 뛰어야 나올 수 있는 기록이라, 러너들의 꿈이다. 제가 시작한 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다. 어렸을 때 마라톤을 했어야 했나(웃음). 사실 원형석 선수를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는데, 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덕분에 기록을 세운 것 같다. 즐겁게 했는데 운 좋게 됐다. 내년 2월부터는 해외 마라톤을 할 예정이다. 국내가 아닌 전세계인들과 함께 뛰면서, 아마추어 최강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이렇게 성과도 발휘되니 연기도 더 잘되는 것 같더라. 그 전에는 연기자 권화운만 있었다면, 사람 권화운, 러너 권화운도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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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생인 권화운은 2015년 영화 '연평해전'으로 데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스카이캐슬', '의사요한', '거짓말의 거짓말', '좀비탐정', '마우스', '달이 뜨는 강', '이벤트를 확인하세요' 등을 거쳐 최근 '용감무쌍 용수정'까지 다수의 작품으로 차곡차곡 존재감을 쌓아오고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가 된 그는 성급한 마음보다, 좀 더 너그럽게 연기를 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논스톱으로 달리면, 어느덧 결승점에 들어오는 마라톤처럼 말이다.
"러닝을 한 후 아예 삶의 신조가 바뀌었다.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보통 없는데, 산책이나 러닝은 혼자 조깅하면서 생각도 할 수 있다. 연기 생각도 하고. 집에서만 가만히 있으면 생각을 못하는 것을 밖에서는 되는 것 같다. 또 러닝으로 다양한 직업군 사람들도 만났는데, 다들 정신적 측면이나 본업을 대하는 자세가 건강하더라. 연기만 바라보고 여유 없던 제 삶도 풍성해진 것 같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간 게 신기하다. '1만 시간 법칙'처럼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전문가가 된지는 모르겠지만, 처음과 비교했을 때 여유 있게 하려는 자체가 많은 변화라 생각한다. 20년, 30년 더 하고 싶다. 제가 좋아하는 연기를 더 사랑하면서 즐겁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더 노력을 해야 할 테고.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기로, 또 사람으로 감동과 교훈을 주고 싶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