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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좋아해야하나 싶으면서도…."
지난 17일 두산 베어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SSG 랜더스전. 두산은 두 가지 선발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루 전인 16일 SSG전 경기 결과가 중요했다. 승리할 경우 4위로 올라설 수 있는 확률이 있지만, 패배한다면 5위가 확정된다. 두산은 16일 경기에서 2대3으로 패배했고, 19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준비하게 됐다.
두산을 잡으면 자력으로 3위를 확정할 수 있던 SSG 타선은 남다른 집중력을 보여줬다. 3회에만 4점을 뽑아내는 등 장원준을 괴롭혔다. 장원준은 쉽사리 이닝을 끝내지 못하며 진땀을 뺐지만, 두산 벤치는 움직임이 없었다.
4회에도 추가 실점이 나왔다. 총 4실점. 장원준은 5회에도 올라왔다. 선두타자 한유섬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에레디아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그제서야 두산은 장원준을 내리고 박신지를 올렸다.
에레이아를 뜬공 처리한 3구 째 체인지업은 장원준의 현역 마지막 아웃카운트로 남았다. 지난 28일 두산 구단은 장원준의 은퇴 소식을 전했다.
에레디아를 잡아내면서 장원준은 역대 9번째 2000이닝 고지를 밟았다. 순위 경쟁과 상관없던 경기. 하늘과 동료들이 장원준의 기록 완성을 도와줬다.
장원준의 선수 역사는 '꾸준함'으로 통한다.
부산고를 졸업해 2004년 롯데 자이언츠 1차지명으로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장원준은 '좌완투수의 정석'과 같았다. 특유의 부드러운 투구폼과 안정적인 제구를 바탕으로 한 경기 운영 등은 장원준을 KBO리그 최고의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리도록 했다. 2008년 12승을 시작으로 경찰야구단 시절(2012~2013)을 제외하고 2017년까지 10승 이상 씩을 거두며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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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은 두산의 '우승 열쇠'가 됐다. 김태형 감독의 '취임 선물'이었던 장원준은 그해 12승을 올렸고,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한 가을야구에서 3승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6년에는 15승을 하며 두산의 통합우승 중심에 섰다.
2018년 3승을 거두며 개인통산 129승을 기록핸 장원준은 지독한 '아홉수'에 빠졌다. 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상징과 같았던 선발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반등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장원준은 은퇴 기로에 섰다. 어린 선수들이 하나 둘씩 성장하는 가운데 두산 구단도 더이상 장원준을 기다려주기 어려웠다. 그러나 새롭게 부임한 이승엽 감독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이야기했고, 장원준은 올해 선발 투수로 퓨처스리그에서 차근 차근 준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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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은 "그동안 유니폼을 벗을 때 벗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다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안 되면 그 때 은퇴를 하자고 생각을 했는데 올 시즌 이승엽 감독님께서 1년 더 기회를 주셨다"라며 "시즌 들어가기 전부터 내 구위가 1군에서 더이상 통하지 않으면 이제는 더이상 미련없이 은퇴를 한다고 생각했다. 구단에서도 선발로 준비할 수 있게 해주셨다. 끝나더라도 후회없이 원래 보직이었던 선발 자리에서 원없이 던진 뒤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왔다. 권명철 투수코치님께서 구위가 예전같지 않으니 투심을 던져보면 어떻게냐고하셔서 연습을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좋았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붙었고, 반등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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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등판을 앞두고 장원준은 은퇴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달했다. 장원준은 "승리를 하면서 더 할 수 있을가 싶었는데,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초반보다 구위가 떨어진 게 느껴졌다. 몇 년 간 구원투수로 나와 올해 선발로 하다보니 체력적으로도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 정도에서 마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후반기 끝날 무렵 생각했다가 순위가 확정되고 구단에 미리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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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은 "(김)재호가 포옹을 하는데 뭉클했다. 던지고 내려와서 거의 오열 수준으로 운 거 같다"라며 "우승할 때도 울지 않았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롯데와 두산. 모두 장원준에게는 소중한 팀으로 남았다. 장원준은 "롯데는 고향팀이고 정말 함께 우승하고 싶었다. 이적하면서 실망도 드렸던 거 같은데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두산은 첫 해 우승도 함께 하고 좋은 추억이 많은 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두산 구단은 은퇴식을 제안했지만, 장원준은 이를 고사했다. 장원준은 "내 성격이 주목받고 그러면 힘들다. 선수로서는 경기에 집중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도망가고 싶을 거 같다"고 웃었다. 두산 구단은 "선수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길었던 20년의 선수 생활에 장원준은 "최고라는 선수보다는 그 자리에서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오랜시간 야구와 함께 한 만큼, 당분간은 야구와 떨어진 삶을 보낼 예정. 장원준은 "앞으로는 휴식을 하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