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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스포츠 영화로 보는 한국 사회'는 스포츠 영화에 담긴 한국 사회의 특징과 시대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는 책이다. 즉 스포츠 영화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여러 부문에 걸쳐 한국 사회의 중요한 현상과 시대적 흐름을 조명한다. 스포츠 영화는 스포츠와 영화가 결합한 대중문화로서 다양한 사회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영화의 역사부터 스포츠 영화의 시대적 표상과 이데올로기, 스포츠 영화에 나타난 리더십 유형과 특징, 진정한 영웅의 의미 등을 폭넓게 살펴본다.
제1부는 스포츠 영화의 발전과 시대별 변화 양상을 다룬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영화 <꿈은 사라지고>(1959)부터 2020년대 작품인 <낫아웃>(2021)에 이르기까지 60년이 넘는 스포츠 영화의 발전 과정을 시대별로 정리한다. 1970년대 고교야구 열풍과 함께 등장한 야구영화 붐, 1980년대에 본격화된 권투 영화의 쇠퇴, 2000년대에 스포츠 영화 제작이 다시 활성화된 배경 등을 살펴본다. 한편 2000년대 스포츠 영화의 특징으로는 비인기 종목의 활성화, 실화 각색 영화의 증가, 여성 인물의 역할과 성격 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2장 '스포츠와 젠더: 대상에서 주체로 선 여성들'에서는 1959년부터 1980년대 권투 영화에 나타난 남성 중심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희생하는 여성의 모습을 <꿈은 사라지고>, <신의 아들>, <카멜레온의 시>를 통해 살펴본다. 특히 <킹콩을 들다>와 <야구소녀>를 통해 2000년대 스포츠 영화의 새로운 흐름인 여성 운동선수와 10대 소녀 영웅의 등장, 주체적·능동적인 여성 인물의 사례를 정리한다.
3장 '스포츠와 돈: 프로스포츠의 발전과 세속적 욕망'에서는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 세계의 프로선수와 스포츠 영화 주인공의 차이를 살펴본다. 프로야구 태동기에 등장한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에 반영된 1980년대의 돈에 대한 가치관, 아마추어 출신 프로야구 선수 감사용의 위대한 도전을 그린 <슈퍼스타 감사용>(2004)을 비교해 정리한다. 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인 권투를 소재로 한 <주먹이 운다>(2005), 비운의 복서 김득구 선수의 삶을 그린 <챔피언>(2002)도 함께 분석한다.
4장 '스포츠와 교육: 학생 선수와 감독/교사의 역할'에서는 <섬개구리 만세>(1973), <글러브>(2011), <맨발의 꿈>(2010), <낫아웃>(2021) 등의 작품에 나타난 초중고 스포츠 지도자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본다. 특히 낙도의 초등학교 농구선수들이 주인공인 <섬개구리 만세>에 유신정권의 검열 흔적과 박정희 우상화, 새마을정신의 강요와 같은 시대의 폭압이 내재 되어있다는 점을 밝혀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5장 '스포츠와 윤리: 폭력의 일상성과 윤리 교육의 필요성'에서는 폭력, 마약 등 스포츠인들의 윤리적인 일탈 행위의 원인과 대책을 스포츠 영화를 통해 살펴본다. <킹콩을 들다>(2009)와 <4등>(2016)에 나타난 지도자의 폭력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한편 할리우드 영화 <그들만의 리그>와 <42>를 통해서는 여성 성차별과 인종차별 문제도 살펴본다.
제3부는 '흥행작에 나타난 스포츠영화의 리더십과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 1장은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에 나타난 손병호 감독의 행적을 통해 군사독재정권이 통치하던 1980년대의 시대적 표상을 정리한다. 강한 힘과 승리만을 추구하고,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일관하던 스포츠 지도자의 몰락이 군사독재정권의 파멸에 관한 메타포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2장에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을 통해 실패한 감독과 성공한 리더의 차이를 정리한다. 김혜경 감독대행과 안승필 감독은 초반에는 강압적, 독선적,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 실패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는 선수들과 상호 소통하는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 목표를 달성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의 행적은 현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국가대표>의 방종삼 코치가 보여준 공감과 포용, 수평적인 리더십 역시 정치를 포함한 다른 분야의 지도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
제4부는 2000년대 스포츠 영화의 특징인 실화 각색 영화의 감동과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탐색한다. 스포츠 영화는 대개 인물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이로 인해 주인공이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승리라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며, 특히 인물의 내면 성장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화의 이러한 주제는 능력과 경쟁, 성공만을 중시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둔다.
<말아톤>(2005)과 <글러브>(2011)에서 장애를 지닌 주인공들의 위대한 도전과 실패,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정신적인 재탄생과 내면의 성장은 감동적이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인 최동원과 선동열의 3번째 맞대결 경기를 소재로 한 <퍼펙트게임>(2011)에서도 두 선수가 보여준 상호 존중의 미덕과 진정한 스포츠 정신도 뭉클하다. <걷기왕>(2016)의 여고생 경보 선수 이만복은 경쟁의 초월이라는 가치관을 통해 스포츠에서 그리고 우리 삶에서 무엇이 진짜 소중한 가치인지를 묻는다.
이처럼 '스포츠 영화로 보는 한국 사회'는 스포츠 영화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징과 시대별 변화 양상, 제작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정서를 폭넓게 다룬다. 특히 스포츠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스포츠 윤리, 지도자의 바람직한 리더십, 진정한 스포츠 정신 등은 현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저자는 스포츠 영화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진정한 스포츠 영웅은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이룬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변인 혹은 아웃사이더가 주인공이 되고, 그들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스포츠 영화는 우리 시대의 관객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스포츠기자 출신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그동안 스포츠 영화의 서사구조, 인물 유형, 지도자의 역할과 유형, 여성 캐릭터 등에 관한 8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면서 스포츠 영화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에는 스포츠 영화 주인공과 스타 선수의 행적을 영웅 신화로 분석한 '스포츠 영웅의 비밀'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헹가래'의 유환석 화백이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아 영화의 핵심적인 특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