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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 찍은 호른의 '기립 연주'…파파노·런던심포니 말러교향곡

기사입력 2024-10-02 11:21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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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3악장→웅장한 4악장으로 마무리…5일까지 3차례 더 내한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호른 연주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천국에 다다른 말러'를 찬양하자 공연장은 흥분한 관객들의 열기에 휩싸였다.

영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188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말러의 '교향곡 1번' 초연을 서울에서 재현해냈다. 지난달 11일 런던 심포니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파파노가 2018년 이후 6년 만에 한국 관객을 만나는 공연이었다.

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는 135년 전 공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는 29살 젊은 작곡가의 당찬 도전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유럽의 관객 대신 말러의 당당한 도전에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1884년부터 1888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교향곡 1번은 당시 젊은 지휘자로 주목받던 말러가 작곡가로 변신해 처음으로 쓴 교향곡이다. '청춘의 풋풋함과 거친 좌절감'을 노래한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와 독일 지역에서 전승되던 민요를 '장송행진곡'으로 변형한 3악장과 타악기의 갑작스러운 고성으로 시작되는 4악장이 문제였다. 기존 교향곡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에 위화감을 느낀 관객들이 연주가 끝나자 야유를 퍼부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35년 후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가 서울에서 재현한 말러 교향곡 1번은 한국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위로를 전했다.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바순과 오보에 등 관악기 연주가 인상적인 1악장과 오스트리아 춤곡 '렌틀러'와 '왈츠'를 대비시킨 2악장은 여느 교향곡 연주와 다를 바 없었다.

3악장이 시작되면서 서유럽 지방의 민요 '프레르 자크'를 베이스의 느린 선율로 변형한 '장송행진곡'이 연주되자 다소 산만했던 객석이 고요해졌다. 한국인에게도 낯익은 유럽 민요를 비장하면서도 서정적인 단조 형식의 장송행진곡으로 완벽하게 재창조한 연주였다.

'지옥에서 천국으로'라는 표제가 붙은 4악장 연주는 3악장으로 한껏 차분해졌던 공연장을 순식간에 뜨겁게 바꿔놨다. 우레와 같은 타악기 연주로 관객을 깨운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는 '느림과 빠름'을 반복하면서 관객을 감정의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이어 플루트와 클라리넷 등 금관악기의 힘센 연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나아가는 말러의 심정을 구현해냈다.

하이라이트는 연주 말미 호른 연주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천국에 다다른 말러를 찬양하는 부분이었다. 본래는 7명의 호른 연주자가 일어나 연주하도록 작곡됐지만, 파파노는 8명의 호른 연주자를 투입해 웅장함을 더했다. 최대한 많은 호른 연주자를 투입해 연주하라는 말러의 유지를 따른 연출이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21세기 건반 여제'로 불리는 중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자왕이 협연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중국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한 유자왕은 특유의 경쾌하고 빠른 타건으로 공연장 분위기를 북돋웠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시마노프스키의 '콘서트 서곡 E장조' 연주도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파파노와 런던 심포니의 내한 공연은 오는 5일까지 세 차례 더 열린다. 3일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을 선보인다. 4일과 5일에는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hyu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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