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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을 찾아낸 모양새다.
23일자 문건에는 '어젠다'(Agenda)라는 제목 아래 '1. 경영 기획' 등 소제목, 그 아래 '계약서 변경 합의' 같은 세부 시나리오가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건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1안·2안 정리'라는 항목으로 'G·P는 어떻게 하면 살 것인가' 하는 대목과 내부 담당자 이름도 적시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G는 싱가포르 투자청(GIC), P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로 보고 있다. 현재 어도어는 하이브가 80%, 민 대표가 18%, 어도어 경영진이 2%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하이브는 해당 '어젠다' 문건으로, 어도어 경영진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일부를 싱가포르 투자청이나 사우디 국부펀드에 매각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본 모양새다.
무엇보다 민 대표는 전날 '아일릿의 뉴진스 콘셉트 도용'을 주장하며 문제 삼은 바다. 아일릿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지난달 선보인 신인 걸그룹으로, 민 대표는 아일릿이 어도어의 인기 가수 뉴진스를 음악적 특징이나 시각적 콘셉트 등을 따라 했다는 지적했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이러한 비판을 두고, 하이브를 압박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특히 민 대표는 최근 하이브 내부 면담 자리에서 아일릿뿐만 아니라, 하이브 산하 레이블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보이그룹 투어스, 자신의 전직장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브도 뉴진스를 베꼈다는 식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문건인 29일자에는 목표'라는 항목 아래 '궁극적으로 빠져나간다'·'우리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 대해서도 어도어 경영진이 본사 하이브에서 독립하고자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이브가 찾은 또 다른 문건에는 민 대표가 외부에 "방시혁 의장이 나를 베껴서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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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는 A씨가 하이브 재직 시절 하이브의 재무 정보와 계약 정보 등 핵심 영업비밀을 확보하고 이를 경영권 확보 계획 수립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민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에 '어도어 경영권 탈취 모의 내용, 사업상 비밀 유출, 인사청탁' 등 어도어 경영진들이 저지른 비위에 대한 사실관계를 묻는 감사 질의서를 발송했다. 해당 질의서는 오는 24일까지 시한으로 알려졌다.
만약 민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이 하이브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하이브는 어도어 경영진 교체를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대표가 18%를 보유하고 있기에, 주주총회가 열리기만 한다면 민 대표 해임 등 경영진 교체를 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민 대표가 어도어 이사회를 장악한 만큼, 주주총회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주총회 소집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하이브는 법원에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주주총회가 실제 열리기까지는 약 2개월이 걸린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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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22일 민 대표는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일릿은 연예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니 날 해임하려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 입장에서 '아류', '이미지 소모' 등 어휘를 선택하며 하이브를 비판하고, '경영권 탈취 시도'라는 하이브 주장에도 "어이없는 언론 플레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23일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하이브에서 주장한 것처럼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려 한 적이 없다"라며 "회사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투자자도 만나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피프티피프티 사태와 유사하다는 일부 지적에 "피프티피프티 사건이 선례로 남지 않았나.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뉴진스가 내달 당장 컴백을 앞둔 점도 언급하며 "하이브는 소속 아티스트의 컨디션이나 일정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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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멀티 레이블 체제의 명과 암도 짚는 분위기다. 하이브의 성장 동력으로 멀티 레이블 체제가 꼽혔지만, 결국 모기업과 자회사 간 경영권 갈등으로 불거진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독자적 경영권을 부여받은 멀티 레이블 체제지만, 각 레이블 간 소속 가수들의 활동 시기나 콘셉트 등이 겹칠 수 있다는 점도 시스템의 한계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