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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했다.'
20년 넘게 e스포츠의 현장을 지킨 전용준 캐스터는 이날 중계를 하는 도중 "설마, 이 순간이 올지 몰랐다"며 울컥했고, e스포츠에선 보기 드문 44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게임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된 김관우 역시 "오래 자리를 지키다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왔다"고 웃으면서도 어머니가 감격하셨다는 얘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20년간의 진심
한국은 이 세상에서 e스포츠를 가장 먼저 시작하고 이를 체계화시킨 자타공인 'e스포츠 종주국'이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선수단이 당연히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를 묵묵히 뒷받침한 한국e스포츠협회를 비롯한 게임 종목사와 후원사 등의 노고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후원사 가운데 산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팬들조차 '찐'으로 인정하는 곳은 단연 SK텔레콤(SKT)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이 e스포츠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앞다퉈 참여한 곳이라면, SKT는 20년 전부터 e스포츠가 뿌리가 내려 열매를 맺기까지 때로는 리더로서 때로는 후원자로서 '진심'을 다해온 곳이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간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사를 지내며 산업을 이끌었던 SKT는 '스타크래프트' 종목에 이어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T1을 운영하며 이번 아시아게임 금메달의 주역인 '페이커' 이상혁, '제우스' 최우제, '케리아' 류민석 3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하기도 했다.
SKT는 당시에도 가장 인기가 많은 T1을 지난 2019년 미국 컴캐스트의 투자를 받아 별도의 독립 회사로 분리시키며 e스포츠의 본격적인 산업화를 주도했고, 이후에는 '아마추어 스포츠 및 미래지향형 스포츠 후원'이라는 전략을 세워 협회를 후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며,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그동안 펜싱과 수영, 핸드볼 등에서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면서 축적된 노하우와 네트워크 등을 총동원 해 금메달 획득에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e스포츠가 적어도 아시아에선 레거시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기쁨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대내외적인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 한국 e스포츠의 경우 e스포츠가 대형 산업화의 길을 걸으면서 투자나 팬덤 등 규모면에서 중국은 물론 프로스포츠의 천국인 북미 등에 밀려 주도권을 잃은지 상당히 오래됐다.
e스포츠협회를 비롯해 국제e스포츠연맹(IeSF) 등 산업을 주도할 기구나 협단체를 가장 먼저 만들며 2000년대까지 트렌드를 주도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 라이엇게임즈나 블리자드 등 e스포츠 종목을 보유한 게임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국제대회와 지역리그 등을 만들며 많은 동력을 뺏길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북미나 중화권 시장이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 기존 스포츠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주최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나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반비례로 한국의 e스포츠 외교력이나 위상도 떨어졌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e스포츠를 자국의 99번째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편입시킨 반면 국내에선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e스포츠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 보니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 종목도 되지 못한 상황이라 국가적인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으로 한국e스포츠협회가 준가맹 인정 종목 단체가 됐고, 이번에 금메달 2개, 은메달(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동메달(FC 온라인) 각각 1개씩을 획득하며 한국 스포츠에 새로운 효자 종목으로 떠오르면서 인식 개선과 위상 강화를 함께 노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다.
대외적으론 주최국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는 아시안게임과 달리 IOC는 여전히 e스포츠의 올림픽 편입에 부정적이며, 기존 정식 종목에 근육 활동이나 동작이 결합된 VR(가상현실) 게임 등을 한데 모아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를 따로 개최하면서 차별화를 두는 등 아직 올림픽 정식 종목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IOC가 2040년대까지 정식 종목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처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e스포츠를 정의하고 진행하는 방법이 다를 경우 어쩔 수 없이 '투 트랙' 전략으로 대비를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종목의 확대와 비례해 정부 및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더욱 필요해질 것은 분명하다.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 경기력향상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기여를 했던 오경식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 그룹장은 "항저우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e스포츠가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차세대 e스포츠 아이템이 될 수 있는 VR 및 AR 게임의 보급과 확산, 그리고 e스포츠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는 등 지난 20년간처럼 앞으로도 e스포츠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