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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견고한 유리천장 속 침묵 깨고 목소리 내는 여성들

기사입력 2023-09-20 10:45

2023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디플롯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성소수자·페미니스트 등이 전하는 여성 차별 이야기

'키스하는 언니들' '목록' '여성의 역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1세기가 됐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최고경영자(CEO) 등의 남녀 비율을 보면 여전히 남성이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의 유리천장은 그중에서도 두껍고 단단하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조사 대상으로 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2013년부터 올해까지 11년째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육아비용, 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 세부 지표를 종합해 일하는 여성의 환경을 평가한 지수다.

그런 여성 중에서도 더욱 차별받는 이들이 있다. 성소수자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꼬리표에 성소수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며 우리 사회에서 이중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중 차별을 뚫고 무언가를 이뤄내는 사람들이 있다. 김보미 씨가 그랬다. 그는 201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에 출마한 후 커밍아웃했다. 우려의 시선이 없진 않았으나 그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국내 대학에서 성소수자가 총학생회장이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첫 성소수자 총학생회장 타이틀을 거머쥔 김씨가 성소수자에게 불친절한 환경에 저항하며 묵묵히 이 사회에 뿌리내려가는 여성들을 만났다. 20대부터 60대까지 커밍아웃한 12명의 성소수자와 인터뷰했다. 그 결과물 '키스하는 언니들'(디플롯)이 최근 출간됐다.

저자는 레즈비언으로서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으로 화제가 된 김규진, 쇼트커트 전후 사진으로 화제를 낳은 유튜버 조송, 커밍아웃한 여성 정치인 최현숙 작가 등 성소수자들을 만나 그들이 견디는 일상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20대들은 동성혼을 찬성하는 쪽이 더 많더라고요. 시간은 제 편이에요. 할머니가 됐을 때는 당연히 저희에게 호의적인 사회일 텐데. 당장의 힘듦 때문에 꺾이면 손해일 거라고 믿어요." (김규진)

영국 작가 로라 베이츠가 쓴 '목록'(알에이치코리아)은 성추행과 성희롱이 범람하는 사회를 힘겹게 헤쳐 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목록'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당하는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목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당한 희롱과 추행의 긴 목록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는 "샌드위치나 만들어 와"라는 폭언을 들었고, 중학생 때는 몸매 평가를 받았으며 성적(性的) 게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거리에서 휘파람을 불며 추파와 음담패설을 던지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을 당한 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대중교통을 탔을 때 일어나는 불순한 접촉 등 일상의 성차별은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졌다.

차별의 개인사를 되돌아본 저자는 비슷한 경험을 느낀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2012년 성차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를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사연이 그곳에 올라왔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평등 이야기, 성차별적인 농담, 직장 내 성희롱, 길거리 추행 등 갖가지 이야기가 잇달았다. 오늘날 그 사연은 20만건이 넘는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모아 세계 여성들이 겪는 공통적인 억압을 추출했다. 책은 여자로 살아가며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기록인 동시에 더 이상 그것이 개인의 일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았다.

저자는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고귀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싸우자"고 말한다.

여성들의 저항이 최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기록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항거의 흔적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 축적됐다.

'여성의 역사'(글항아리)는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학자 미셸 페로가 남성들의 은폐로 가려진 역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춰낸 책이다. 그는 여성들의 사적 기록과 공적 출판물 등 수많은 자료를 찾아내 여성의 존재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냈다.

책은 문인, 음악가, 배우, 연구자, 기자, 여성운동가 등 각자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선명한 족적을 남기려 발버둥 쳤던 여성들의 이야기 조각을 모았다.

사학자 폴 벤과 조르주 뒤비는 폼페이 벽화의 그림을 통해 로마 시대 여성들의 모습과 욕구를 추정했다. 화가 콜레트 드블레는 미켈란젤로 등 여러 유명 화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여성에 대한 시선을 연구했다. 아를레트 파르주는 파리의 고문서를 뒤져 파리에 살던 여성 시민의 삶을 복원했으며 장 니콜라는 프랑스혁명 시기 여성의 폭동을 조명했다.

저자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이 오랫동안 지속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 키스하는 언니들 = 344쪽.

▲ 목록 = 황가한 옮김. 308쪽.

▲ 여성의 역사 = 배영란 옮김. 29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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