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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부산=조지영 기자] " 요즘 영화인들을 보면 행복하고 풍족한 기회 속에서 작품을 만들지만 실상 영화적 질이 나아진 작품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격조와 파격의 예술가'인 정일성 촬영감독을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으로 선정, 그의 대표작 '화녀'(71, 김기영 감독) '사람의 아들'(80, 유현목 감독) '최후의 증인'(80, 이두용 감독) '만다라'(81, 임권택 감독) '만추'(81, 김수용 감독) '황진이'(86, 배창호 감독) '본 투 킬'(96, 장현수 감독) 등 총 7편을 조명할 예정.
정일성 촬영감독은 '화녀'에서는 그만의 파격적인 앵글과 색채 미학을 선보이며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구축했고 '최후의 증인'에서는 사계절을 담기 위해 1년 이상 촬영하는 열정을 드러냈다. '신궁'(79)으로 임권택 감독과 인연을 맺은 그는 '만다라'로 정일성 미학의 정점을 찍게 되고 당시 한국영화에선 만나기 힘든 미장센과 시퀀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첫 한국영화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 '서편제'(93) '취화선'(02) 등 임권택 감독 대부분의 작품에서 촬영을 도맡으며 오랫동안 임권택 감독 사단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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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회고전이라는 걸 해외 외신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때 '어떻게 저렇게 오래 영화를 할 수 있을까?'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회고전의 주인공이 됐다. 아시아에서는 촬영감독으로서 회고전을 한다는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 굉장히 영광스럽다. 앞으로 좋은 촬영감독이 회고전을 하길 바란다. 영화 인생을 보면 격변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좌익과 우익이 팽팽하게 맞섰다. 독재정권 시대를 보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겪는게 영화를 하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긴장 속에서 영화를 통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 정신무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행했던 근대사를 통해서, 고통 받았던 우리 세대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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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근들어 몇몇 아쉬움을 남기는 한국영화에 대한 일침도 놨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해방부터 6.25때까지 영화계는 처참했다. 우선 경제 상황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선배들이 나와 그 맥을 유지했다. 명작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줬고 이런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과거에는 1차적인 기술적인 부분을 보면 현상소도 없었다. 그래서 수작업을 통해 현상이 됐다. 필름의 완성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영화의 역사가 이어져온 것이다. 현재 영화인들을 보면, 기술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요즘 영화인들을 보면 행복하고 좋은 기회 속에서 촬영을 한다. 그런데 영화적 질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우리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촬영감독이다. 요즘은 필름을 본 적이 없고 디지털만 아는 영화학도들이 많다고 하더라. 필름을 하는 사람들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다고 하더라. 아날로그 과정의 기술적인 부분을 완벽하게 이수하지 않으면 좋은 디지털을 촬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디지털만 하는 촬영감독을 보면 뭔가 아쉬운, 미완성의 느낌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그동안 138편을 촬영했지만 그 중 4~50편은 부끄러운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겁없이 내가 촬영했던 영화를 대표작으로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철딱서니 없었다. 내가 부끄럽게 생각했던 4~50편 영화가 내겐 교과서적인 교훈을 남겼다. 내가 실패한 영화가 내게 좋은 교과서가 된 것 같다. 과거를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4.19 혁명, 5.16 군사정변 이후 영화가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영화가 몇몇이 남았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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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못 다 이룬 영화의 꿈에 대해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죽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영화 인생에 있어서 지금까지 함께 작업을 해온 감독이 38명이다. 많게는 한 감독과 20여편의 작품을 같이 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1편의 작품으로 인연이 끝난 감독도 있다. 이런 감독들을 떠올렸을 때 내가 오늘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3분의 1은 함께한 감독들의 힘인 것 같다. 또 1년이면 6개월 이상 촬영장, 집 밖으로 다녔는데 집을 홀로 지켜준 내 아내에게 3분에 2를, 나머지 3분의 1은 나의 능력이 만들어준 것 같다"고 진심을 전했다.
그는 "'영화가 뭘까?'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했던 영화 중에 다시 정리를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기도 하다. 물론 영화라는 게 나 혼자 정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나를 모르는 젊은 감독이 느닷없이 어느날 찾아와 '같이 영화하고 싶다'고 했으면 좋겠다. 길이 없는 들판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고 식지 않는 영화 열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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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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