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트렌드100-36] 향기로 이야기를 만드는 남자들, 조향사 이성민&민경만 대표

전혜진 기자

기사입력 2017-07-24 07:49


※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서른 여섯 번째 주인공은 국내 향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조향사 이성민 그리고 베니티 테이블의 민경만 대표입니다.


[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향수라는 오브제에 대한 관점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패션 액세서리이자 사치품, 또 어떤 이에게는 화장품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예술품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남자에게 향수는 마음을 담은 하나의 이야기다. 단지 코에 좋은 향보다 가치와 경험을 담아낸 새로운 형태의 아트이며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도구다.

남들은 하지 않던 시절, 조향사 이성민은 200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퍼퓨머리 브랜드 '퍼퓸라이퍼'를 런칭, 해외 명품 브랜드에 의존해 획일적이고 대량 소비되던 국내 향수 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점차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향에 열광하고 그의 향수에 대한 철학과 그에 대한 노력은 시류와 딱 맞아떨어졌다. '스타벅스'는 못 되어도 '홍대 로스티드 커피숍'은 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 어느 새 그를 따라 자기 브랜드를 가진 국내 조향사들이 우후죽순 탄생했고, 그들은 또 하나의 크루가 되어 대한민국 조향 트렌드를 이끈다. 여기에 5개 이상의 국내 조향사 브랜드를 묶어 판매하고 있는 베니티 테이블의 민경만 대표도 가세했다. 향수를 하나의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자는 두 남자의 일치된 꿈은 예술과 유통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시장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들을 만난 곳은 한적한 종로구 누하동에 위치한 살롱 두 파퓨메(SALON DU PARFUMEUR). 이름 그대로 조향사들의 살롱이자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두 세명의 조향사들이 함께 작업하고 소비자들에겐 판매 및 직접 DIY 체험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아트감성 가득한 곳. 은은하게 향이 울리는 이 공간에서 그들에게 향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조향사로서 꿈꾸는 것들에 대해 들어보았다.(이하 일문일답)


이성민 조향사
-조향사라는 직업을 자세히 소개해달라.

이성민(이하 민): 예전에는 조향사라고 얘기하면 배타는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조향사'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히 향을 개발하는 사람. 그러나 우리 조향사들 나름대로는 이 일에 대해 다르게 정의한다. 사람마다 후각적인 경험과 취향은 제각각이고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짚어내는 일이자 동시에 향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관념을 만들어 드리는 거로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 향수는 화장품이거나 혹은 사치품, 또는 패션 액세서리나 화학 과학의 영역이지만 향에다 이야기를 담고 감정을 표현하고 미학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향수는 창작의 영역이다. '퍼퓨머리'라고 표현하고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향수를 좋아해서 만들기 시작했고 이젠 사람들에게 행복과 가치를 전해주는 향수들을 만들고 싶다.

-조향사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이: 지금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꽤 많아졌다. 제가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회사에 속해 향을 만들어내는 분들이 서른 분이 안 됐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 캔들이나 디퓨저 관련 조향사분들까지 포함해 100명 내외 정도인 듯하다. 조향사 양성 교육기관도 많아졌긴 하지만, 배우기가 힘들다. 원료 비용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는 일이다 보니 알려주기도 쉽지 않다. 추상적인 영역이라 설명해도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조향사의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이: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시작해서 서른 살에 AE로 그만뒀다. 때려치고 평소 좋아했던 일 한번 해보자 싶더라. 그때만 해도 관련 법규나 식약처 이런 부분에 관해 몰랐고 그저 배워서 예쁜 병에 담아 팔면 되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했다. 상황도 막막했다. 향기 회사를 찾아가 '일만 하게 해달라, 배우고 싶다'고 말해도 다들 '이성민 씨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향수 브랜드가 어디 있고, 만들면 누가 사주냐'고만 했다. 다들 안된다고 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그렇다면 스스로 해보겠다' 라며 뛰어들었다.


-그 과정,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막상 제 이름을 건 향수를 시작하려고 보니 배울 데도 없고 얼마 없는 학원에서는 가르쳐 주는 게 없었다. 해외 화학 서적을 구해 무작정 독학도 시작했지만 막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판매 순으로 놓고 보면 1등 향수는 있겠지만, 향에는 표준이 없고 그저 나에게만 좋은 향이 따로 있다는 것.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 아 내 감성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겠구나. 나만의 노하우를 개척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스타벅스'는 못되더라도 홍대에 있는 '로스티드 커피숍'은 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복병은 원료였다. 국내에는 원료를 다 수입하고 있는데, 해외 수입은 단위가 크다. 그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1kg 정도만 팔면 안 되겠냐고도 해봤고 비싼 원료를 적게 사면서 샘플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조향사의 꿈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혀 배울 데가 없으니 공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이런 것을 제공할 수 없냐 부탁했다. 몇 명 해외 조향사들이 그런 상황을 알고 공부할 것들을 줬다. 그걸 똑같이 만들어보고 변형도 해보며 연구했다. 그 이후에도 제작 업체를 찾는 게 힘들어 공장에 ?아가 500개만 어떻게 안되겠냐고 사정하기도 했다. 정말 직접 발로 직접 뛰었던 시간이다(웃음)

-그렇게 힘들게 출시한 첫 향수가 완판됐다. 비결은 뭐였을까.

이: 그렇게 처음 '메리 고 라운드'를 만들었는데, 생갭다 반응이 좋았다. 그동안 사람들의 인식은 향수라는 게 공장에서 찍어내거나 수입하는 걸로만 알았지, 개인이 자기 이야기를 담아서 만들었다는 게 신기했나보더라. 근데 처음이다 보니 완벽하지 않았고, 불량이 나기도 했다. 고객들에게 전화가 오면 너무 미안했고 그들에게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이렇게 만들었는데 처음이라서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향수는 새 걸로 보내고, 또 다른 향이 나오면 선물로 보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부분 받고 좋아해 주셨고,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카페나 블로그에 이야기와 함께 소개해 주시더라. 그때 깨달은 게 따로 이게 마케팅 기회구나. 따로 큰돈 들일 수 없으니 이만큼 얘기할 기회가 이때밖에 없구나 싶어 나중에는 그것만 기다렸다, 하하. 택배 시간을 맞추기 힘들 땐, 직접 배송하러 찾아갔다. 급하다고 하면 밤에 버스 타고 가서 고객을 만나 시향도 하고. 이런 게 여기저기 언급이 되니까 입점 문의가 많이 왔고, 결국 퍼퓸라이퍼는 당시 100여 군데 편집샵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 인터뷰, 콜라보나 행사초대 강연 등을 하면서 조명 받기 시작했다.


-향수에 스토리를 담는다는 것,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 (향수병에 새겨진)이 그림이 딸이 처음으로 그린 별이다. 저희 집 뒷산이 제법 예쁜데, 별이 너무 총총했던 밤이 있었다. 당시 딸이 "내 별은 어딨어?"라고 물으며 별 그림을 그리더라. 그 순간 '어릴 땐 우리도 자기 별이 있다고 믿었었는데, 잊고 살았구나' 싶었고 '이 녀석이 자라면 자기 별을 잊지 않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아빠의 선물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 그 시간의 순간의 느낌. 계곡물과 이끼 냄새, 이런 것들을 모아 별의 향을 만들었다. 사실 향이라는 게 이야기를 듣고 맡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상상되고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이런 거다. 단순히 코에 좋은 냄새를 만드는 거면 의미 없다. 누구나 자기 기억 속 냄새가 있지 않나. 잊히지 않는 장면처럼. 이렇게 사람 감정을 흔든다. 향수는 이렇듯 감정의 표현과 서사 구조, 미학적 관점까지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도구라 생각한다.

-향을 만들어 내는 일. 이성민만의 특별한 철학이 있나.

이: 우울증을 앓은 적도 있고 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향수를 통해 위안을 많이 받았다. 계속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실제적으로는 돈도 없으니 문화생활도 안 돼, 여행도 못 가. 그런데 향수가 그런 것들을 대신해줬다. 용량 작은 걸 하나 사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간 행복할 수 있었다. 누가 어떤 얘기를 담았고, 어떤 향을 만났고. 이렇게 멋진 이미지와 스토리가 전해지니 이런 것으로 위안을 받았고, 우울할 때 듣는 슬픈 노래, 코미디 영화와 마찬가지로 향수 또한 하나의 예술임을 믿게 됐다. 저도 향을 만들 때 이게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를 되게 고민하게 된다.

-향수는 개인적인 물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와 대중성을 함께 잡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얼핏 대립판처럼 보이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다. 어떨 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자. 어떨 땐 남들이 이해 못 해도 내가 생각하는 철학을 담아서 내놔 보자. 적절하게 섞어 가야 한다. 나 혼자 좋아하는 것 하다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그 반응이 대중에겐 재미없을 때도 있어서 적절하게 맞춰간다. 고집을 부리진 않는다. 그런 사업적인 부분은 민 대표님께서 생각해주신다.


-민경만 대표님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민경만(이하 민): 원래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저는 원래 제 마음대로 사업을 하고 계속 투자자분들과 사업 검토해주시는 분들과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사업을 진행했었다. 그것 중 하나가 문화 행사다. 판을 잘 짜면 투자도 가치 있을 것으로 판단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법인을 차리고 시작한 지 9개월이 됐다. 그간은 이것저것 만들어봤던 시간이고, 이제 점차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 같다.

-특별한 사업 철학이 있나.

민: 재미있게 하는 거다. 베이스가 다를 수 있어도 목표 지점은 같다. 최근까지 계속 고민을 많이 하고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일단은 계약이 진행되고 사업들의 결과를 만들어 내다 보니 다양한 쪽으로 점차 재미있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 분은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되었나.

민: 작년(2015) 2월에 처음 만났다. 당시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그 파티 공간에 향이 차야 완성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소문 끝에 이성민 조향사님을 찾아 향 퍼포먼스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거절당했다. 당시에는 향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뭔가를 잘 기획해서 잘 한다면 모르겠는데 단순히 1차원적으로 제안해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웃음)

이: 그 당시에는 거절하긴 했는데, 만나서 얘기해보니 잘 통하더라. 민경만 대표가 향에 대해서는 잘 몰랐더라도 문화컨텐츠에 대한 열망은 분명했고 제 이야기에 공감했다. 함께 향수를 정말 '컬쳐'로 만들어 보자고. 사실 제 나름대로 소명의식이 있다. 물을 사람도 없어 맨땅에서 헤딩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나 말고도 이런 꿈을 꾸는 이들이 덜 고생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보자.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고 꿈 있는 친구들을 지원해주자는 것. 그런 친구들을 돕기 시작했고,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제법 크루가 생겨났다. 국내에서 자기 향수 브랜드 하는 친구들은 다 제 동료나 제자나 거쳐 간 친구들이 많다. 그런 나름의 소명의식에 같이 움직이는 공감을 해주셨다. 법인 형태에 자기 이름 건 친구들이 유통에 대한 고민없이 유통망 구축해보자 싶어 이렇게 둘이 함께하게 됐다.
-지금 국내 향수 산업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한국 사람들은 기술 습득이 빠르고 이해력도 좋다. 그러나 인력 부분을 제외하곤 케미컬부터 천연 에센셜 오일까지 원료는 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향이라는 게 단순 기술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닌데, 국내 향료회사 대부분은 화학과 출신이고 코에 좋은 것만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또 소비자와 조향사가 정확한 명사로 소통할 수가 없기도 하니 상상해서 엉뚱한 결과물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향료회사와 화장품 회사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니까 조향사들이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민: 저는 수치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사실 향수에 대한 판매 수량은 계속 늘고 있는데, 규모는 그대로다. 향수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건 뷰티 편집샵 등에서 향수를 다 뿌려볼 수 있으니 구매는 온라인에서 많이 한다는 거다. 점점 다양한 형태의 구매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더 새로운 것, 남들이 안 하던 것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사실 조향사라는 직업은 과거에는 '장인'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옅어지고 있다.

이: 유럽처럼 패션 브랜드에서 활동하는 스타 조향사, 화학 기반의 화학자, 그 다음 아티쟌으로서 홀로 예술을 해 나가는 이 정도로 나눠질 것 같다. 아무래도 역사랄 게 깊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의 인식은 그냥 연구소 용역 회사 직원 정도였다. 해외처럼 패션 브랜드가 스타 조향사를 키워내지 못하고 또 전통적인 퍼퓨머리도 없는 상황이다. 같은 조향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다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이 모호한 것 같다.

민: 사실 공모전이나 사업 설명하러 가면 그 부분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오래 걸린다. 사업적인 건 돈이고 논리다. 저는 돈과 사업에 대한 입장이 있다 보니 이런 대화가 필요할 때는 자료 보내는 것보다 직접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향수 트렌드를 이끄는 두 분께, 요즘 트렌드에 대해 묻고싶다.

이: 몇 가지 꼽아보자면, 예전에는 남녀 향수 구분이 명확했는데 이젠 경계가 흐려졌다. 용기도 화려한 것이 많았지만 점차 심플한 것으로 변화됐다. 용량도 넉넉했지만 점차 들고 다닐 만 한 크기로 나온다. 향 자체로는 복잡하고 클래식한 향에서 직관적인 것으로 계속 변해가고 있다. 보다 심플해지고 다양한 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브랜드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 안에서 유니크한 것들을 찾는 트렌드 세터들도 나온다. 이렇게 선순환되는 구조인 것 같다.

민: 향수 시장에 대해 조사하며 느낀 게, 저렴한 것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향수 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희에게는 너무 급격한 변화라 하하. 또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원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는 게 트렌드인것 같다.


gina1004@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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