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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까르띠에 '하이라이트', 셀럽스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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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이종현기자] 럭셔리 브랜드들이 줄줄이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까르띠에의 '하이라이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선 루이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도산공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선 10주년을 맞아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전을 개최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런 전시를 개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료 전시이기 때문에 전시 수익을 얻을 수도 없고, 심지어 자사 제품은 한 점도 전시되어 있지 않아 제품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 미술품을 운반하기 위한 막대한 운송료, 전시 기획에 따른 인력 소요, 전시장 인테리어까지. 세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토록 밑지는 장사를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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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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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에르메스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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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보는 우리의 눈과 일상 생활 속 우리의 눈은 다르다. 평소 우리의 시선이 그냥 '보는 것'이라면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우리의 눈은 무언가를 '찾는다'. 작품의 의도라던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라던지, 작품을 상상하고 음미하며 일상적인 무언가를 볼 때 보다 훨씬 관대하고 사려 깊게 대상을 쳐다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관대한 눈은 예술을 바라볼 때만 적용된다. 즉 같은 대상이라도 예술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우리의 관심도가 달라진다는 것. 극적인 예로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이 시중에 판매되는 흔한 소변기를 간단한 서명과 함께 '샘'이라는 작품으로 전시에 출품했고, 논란 속에 '샘'은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상 속 변기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예술로서의 변기에는 감탄하는 아이러니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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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르셀 뒤샹 '샘',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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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계 최초의 진공 시계 ID TWO, 까르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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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시를 여는 브랜드들의 제품들은 어떨까. 까르띠에의 주얼리는 예술 작품인 동시에 팔려야만 하는 상품이다. 사려 깊게 음미해야 할 전시회 속 작품의 속성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의 가방 또한 마찬가지다. 루이비통은 짐꾼에서 시작해 여행과 운송 수단에 발전에 따라 '안전하고 견고한' 트렁크를 개발해온 개발자, 혹은 장인이다. 에르메스 역시 귀족들에게 마구용품을 생산하는 마구상으로 시작해 유럽에 가방과 지퍼 같은 신물문을 들여오는 한편 마구 안장에 사용하는 견고한 봉제법 새들 스티치를 이용해 가방 문화의 혁신을 이뤘다. 일상 속 대중들에겐 단순히 '비싸고 예쁜 명품'이지만 세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장인 정신, 그리고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로 탄생한 예술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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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플라워 트렁크를 제작중인 루이비통 제작자, 셀럽스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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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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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브랜드들의 전시는 잠시나마 사람들이 잊고 있던 제품들의 예술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새겨 보게 한다. '전시'라는 특별한 행사를 통해 무관심하고 일상적인 시선을 예술을 볼 때의 사려 깊고 관대한 시선으로 변화 시키기때문. 전시를 통해 예술 작품에서 느꼈던 감정, 찬미, 아름다움은 자연스레 그 계기를 만들어준 주체에게 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브랜드는 잠시나마 전시회 속 예술 작품과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브랜드들의 전시는 '상품'에 쏠려있던 자신들의 무게중심을 '예술' 쪽으로 움직이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물론 루이비통처럼 제품을 전시했을 경우 그 효과는 더욱 크다. 브랜드의 역사에서 부터 발전 과정, 업적 등을 전시함으로써 제품이 갖는 예술적 측면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의 스토리나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할 경우 '자기 자랑'에 그칠 수 있다는 단점 또한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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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까르띠에 '하이라이트', 셀럽스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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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 17회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자 오민의 작품, 에르메스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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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브랜드들의 전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를 전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까르띠에 재단은 1984년 설립돼 전세계적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해왔고 에르메스 재단 역시 2000년 부터 에르메스 미술상을 통해 국내 작가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이런 럭셔리 브랜드들이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을 출세한 큰 형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막내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까르띠에,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예술임과 동시에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기업이다. 이런 브랜드들은 회화, 조각, 사진, 음악 등 예술이라는 한 가족 안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인 '패션'을 선택해 큰 부를 축적했고, 그렇기에 그 부를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다른 장르의 예술과 작가들에게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까르띠에의 전시회에선 기존 전시회에서 볼 수 없던 장르의 예술, 독특한 메세지, 생소한 국가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차이 구어치앙의 화약으로 만든 예술 작품들, 자연 환경의 소리를 녹음해 영상과 함께 구현한 버니 크라우스의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등 참신하고 새로운 가치의 예술을 보호하려는 재단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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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까르띠에 '하이라이트', 셀럽스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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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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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술과 예술이 고상한 척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 처럼, 일부에게는 이런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과 아이템이 그냥 사치품일지도 모른다. 마치 회화를 모르는 사람이 앤디워홀의 작품을 보고 '수프 캔 그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라고 생각 하듯이.
하지만 앤디 워홀의 단순한 실크 프린팅이 왜 의미가 있는지, 팝 아트가 일상 속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 평가는 달라진다. 브랜드들이 전시를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려는 이유, 그것은 바로 소비와 사치재라는 프레임 때문에 잃어버린 예술의 가치를 다시 보여주려는 몸부림 인 것은 아닐까.
over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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