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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칸(프랑스)= 조지영 기자] 공사다망했던 신작을 어렵사리 공개한 봉준호 감독. 그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옥자', 그리고 칸영화제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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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기자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 마이크를 잡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최고 책임자(CCO) 조나단 프리드랜드는 "어제(19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옥자'를 보는 게 정말 감격스러웠다. 관객이 따뜻하게 받아주고 맞아줘 감사하다. '옥자'는 190여 개국, 국경을 초월해서 서비스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들어줄 작품이다. 가족과 동물의 사랑을 담고 있는 '옥자'를 통해 더 많은 분께 봉준호 감독이 사랑받길 원한다"며 전했고 '옥자'를 탄생시킨 봉준호 감독 또한 "나 역시 그동안 ('옥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포처럼 쏟아낼 수 있다. 한국인들과 깊게, 또 진하게 '옥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앞서 '옥자'는 지난 19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기자 시사회, 공식 상영회를 통해 전 세계 첫 공개 됐다. 스트리밍 개봉 방식 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각종 논란을 일으킨 '옥자'는 그야말로 영화사(史)를 뒤흔든 뜨거운 감자였고 칸영화제 내내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예상보다 더 뜨거운 호평이 터지며 논란을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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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서 '옥자'를 공개하기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연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의 평가를 받으려니 마치 뜨겁게 달궈진 팬 위의 생선이 된 기분이다"며 부담감과 긴장된 마음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어느덧 칸영화제에 참석해 '옥자'를 공개하고 또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된 봉준호 감독은 "뜨겁게 달궈진 팬 위의 생선이 새까맣게 탔다"며 변화된 심경을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개막 당시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큰 스크린의 영화가 아니면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어떤 말을 해도 내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흥분되고 비록 영화를 안 좋게 봐도 괜찮다. 최근 기사를 보니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논란에 대해 번복, 무마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굳이 안 그러셔도 됐는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말한 발언이 단편적으로 나를 저격해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넓게 극장 개봉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고 나 역시 감독으로서 그분의 생각이 이해가 된다"며 논란을 의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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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이슈와 논란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주제인 '옥자'의 제작 의도도 거침없이 밝힌 봉준호 감독. 그는 "우리가 반려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만큼 애견인, 애묘인들이 많다. 반려인을 키운다고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지 않나?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자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백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동물도 동물을 먹는다. 단지 지금의 형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량생산되는 포섭을 꼬집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도살장이 거대한 공장으로 등장하고 있고 동물들은 제품으로 자라나고 있다. 실제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도살장에 현장 답사를 갔는데 하루에 수천, 수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되더라. 보통 공장은 무언가를 조립하는 곳인데 도살장은 이미 완성된 생물체를 분해하는 과정이지 않나? 이런 모순을 '옥자'에 담고 싶었다. 도살장의 모든 과정을 다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그걸 보고 난 뒤에 한 달 반 정도 고기를 못 먹었는데 이후 한국에 돌아와 다시 자연스레 한우 집을 찾게 되더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가 고기를 먹어왔지만 그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초부터 먹기 위해 키워지지 않나? 고통 속에서 자랐다가 금속 기계 속에서 분해된 동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가장 궁금해했던 '옥자' 속 슈퍼돼지 옥자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는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내성적인, 혹은 억울하게 생긴 이미지의 동물을 떠올렸다. 옥자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누가 저 돼지를 저렇게 힘들게 만드는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우리 영화는 옥자의 얼굴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에 가면 매너티라는 포유류가 있는데 매너티 얼굴을 옥자 이미지로 참고했다. '괴물'(06) 때 괴물을 만든 장희철 감독과 '옥자'의 옥자를 만들었다. 그분과 가장 수줍고 순둥이 같은, 억울한 인상을 가진 동물을 만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을 위해 깜짝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다. '괴물'에서 괴물 목소리를 연기한 오달수처럼 '옥자'의 목소리도 익숙한 배우가 연기했다는 것. 그 주인공은 바로 충무로 '신 스틸러' 이정은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 목소리의 30%가 이정은의 목소리다. 처음에는 이정은이 옥자가 회현 지하상가를 질주하는 장면에서 휠체어 타는 환자로 특별 출연하는데 딱 한 장면만 출연을 부탁하기 아쉬웠다. '마더'(09) 때도 이정은이 출연했는데 그 인연으로 '옥자'까지 오게 됐다. 메이킹 영상이 공개되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정은이 너무 깊게 몰입해 미안할 정도였다. 온종일 돼지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목소리를 연구했다고 하더라. 옥자를 연기하기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정은의 목소리 덕분에 옥자의 섬세한 감정이 잘 표현된 것 같다. 그리고 뉴질랜드에 특수 종의 돼지가 많은데 그 돼지들의 목소리를 따 이정은 배우 목소리와 섬세하게 믹싱해서 옥자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한편, '옥자'는 오는 28일 발표되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중 하나로 경쟁을 펼치며 오는 6월 28일, 한국시각으로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최초 공개된다.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넷플릭스와 동시에 29일부터 극장에서 상영된다.
칸(프랑스)=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NEW, 스포츠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