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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초점] '개콘'이 재미 없어진 것일까, 우리 입맛이 바뀐걸까

박현택 기자

기사입력 2017-05-11 09:05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개콘 재미없다'

수도 없이 흘러나온 말이다. 재밌는 코너가 없다는 사람, 무표정으로 봤다는 사람, 심지어 '개콘'이 어떤 요일에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국내 최장수 정통 개그 프로그램이자, 스타 방송인의 산실,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피로회복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실제로 현실이 그렇다. 찬란했던 '개그콘서트'는 조금씩 빛을 잃어갔고, 창의력 대신 매너리즘이 자리했다. 은유 없는 패러디의 향연. 날카롭던 풍자의 칼날은 무뎌졌고, 참신했던 코너들은 억지 웃음으로 바뀌는 동안 '개그 콘서트'는 '뜨면 떠나는' 공간처럼 인식됐다.

1999년 1회부터 '개콘'을 지켜 온 개그맨 김준호, 그보다 앞서 파일럿 방송부터 출연해 자부심 넘치는 김대희, '개콘' 최다 출연자이자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리는 유민상, 1선의 이상훈, 서태훈 등은 자신들이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안방'이 지독하게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는 900회를 맞이한 KBS 2TV '개그콘서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준호는 '개콘의 위기', '침체기'라는 지적에 대수롭지 않은 듯 마이크를 들었다. 그는 "19년간 호평과 혹평을 오가며 받다보니, 다소 무뎌진 면이 있다. 비판을 받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열정을 다해서 연습하고, 쉼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필요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개콘'이 쓴소리를 받고 있지만, 꼭 다시 사랑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희는 "같은 생각이다"라며 "인생에도, 하물며 주식도 등락이 있지 않은가. 잠시 부진하거나 혹평을 받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시청자들은 꼭 돌아와 주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산증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개그콘서트'는 3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사랑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격전지'같은 예능 시장에서 꿋꿋하게 19년을 이어왔으며 그 어떤 공개코미디보다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혹평의 그늘이 유독 장기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 '곧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김준호는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했다. 김준호는 "현재 한국 코미디는 템포가 빠르다.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보아도 무척 빨라졌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도 함께 템포가 빨라지셔서 '단 시간'에 웃겨주시길 원하신다"며 "이런 추세로 간다면 단 '2초'만에 웃겨야 하는 셈인데, 개그맨들도 열심히 노력해야겠지만 시청자들께서도 조금만 여유있는 마음으로 코너를 봐주셨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성급하게 '웃겨봐'라고 달려드는 자세 대신 '느긋하게 지켜봐 달라'고 당부한 고참.


여기에 김대희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종편과 케이블까지 수많은 방송사들이 생겼는데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은 3개 뿐이다"라며 "자꾸만 침체라고 강조하시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언제나처럼 웃음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두 선배가 열심히 후배들을 위한 항변을 이어가자, 이상훈도 '꼭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용기있게 입을 뗐다. 그는 "타 예능 방송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토크쇼나 버라이어티는 CG와 자막까지 동원되는 방송"이라며 "음식으로 치면 MSG가 많이 첨가된 맛이다. 그런 맛에 적응된 시청자들께서 '개그콘서트'를 보시면 다소 싱겁다고 느끼실 수 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MSG 없이 5분간 깊은 맛을 내는 진국이다. 담백하고 깊은 맛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준호는 "'개그콘서트'는 4인 식탁용 개그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개그를 선보인다"며 "예전에 한 5년간 서로 대화를 끊었던 한 아버지와 아들이 '개그콘서트'를 보고 함께 웃다가 다시 친해지셨다는 일화를 들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소통하게 만들고, 친근하게 대화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과거에는 '개그콘서트'의 로고송이 나오면 '내일이 월요일이구나'라고 생각하시던 시절이 있었다. 신인 발굴에 힘쓰고, 노력하다보면 다시 그런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그콘서트'는 14일부터 3주간에 걸쳐 900회 특집을 방송한다. 역대 '개그콘서트'를 빛낸 레전드 개그맨들이 호스트로 출연해 떠오르는 신예 개그맨들과 함께 콜라보 개그 코너를 펼칠 예정이다.

김병만, 이수근, 김준호, 김대희, 유세윤, 강유미와 서태훈, 이수지, 홍현호, 손별이, 박진호가 무대를 빛낸다.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15분 방송.

ssale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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