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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가난이 창문을 두드리면, 사랑이 그 창문으로 달아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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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원은 서현을 만나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셨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서현은 지금까지의 따뜻한 의사선생님이 아니었다. 서현은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말했다.
토익을 배우고, 온갖 자격증을 따고, 해외 연수를 다녀와도 대기업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잠깐 자존심을 접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확실하게 합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미생'의 장그래조차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대기업으로 가는 문의 손잡이조차 잡지 못하는 이들의 한숨은 오늘도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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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택에게 있어 하지나(한선화)는 헤어진 옛 연인이자 현 상사다. 병역 의무를 진 대한민국 남자에겐 너무나 익숙한 현실. 도기택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그만둘 뜻을 드러내지만, 이미 현실을 겪은 하지나는 그런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하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뭐가 중요해? 사람들 금방 잊어. 망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에 대한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버텨. 창피한 거 순간이야. 자존심이 밥먹여주니? 할 수 있으면 더 친해져. 말단 직원하곤 말 섞기도 힘든게 사주 아들이야. 이런 식으로 친해져서 오빠한테 나쁠게 뭐니?"
도기택은 과거 자신에게 결별을 선언한 하지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인턴이 된 도기택은 '공시생 연인을 둔 직장인' 하지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실감했기 때문이다. 속없이 선량하고 성실하기만한 도기택에게, 하지나도 손을 내밀었다. 모두가 듣고 싶어하는 바로 그 위로다. "넌 할 수 있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오빠도 나도 더 열심히 해.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마. 오빠만 떳떳하면 되는 거 아냐? 난 오빠한테 한방 있다고 생각해. 맘만 먹으면 다 잘해내잖아."
이동휘는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배우다. 한선화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배우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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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3인방은 개만도 못한 취급에 울분이 폭발했다. 다함께 사직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우진(하석진) 부장은 이들을 차분하게 위로했다.
"하루종일 부장 개 뒤치닥거리하려고 몇년씩 공부하고 온 거에요? 시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겁니까? 자기 가치는 자기가 증명하는 겁니다. 나를 함부로 하게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들도 무감각해지죠.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해야하는 사람인지."
힘을 얻은 은장도 트리오는 나갈 때 나가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하기로 결심한다. 은호원은 서우진에게 "제 자존심하고 바꿔 얻은 기회다. 열심히 해서 제 이력서에 경력 한줄 채우고 자존심도 되찾고, 계약 끝나는 날 떳떳하게 회사 나가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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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택은 공시생 시절을 회상하며 "혼자였으면 창문 없는 방은 어림도 없다"고 되뇌인다. 어려움 없이 살아온 장강호가 '창문 없는 방이 많냐'고 되묻자, 도기택은 씁쓸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많지. 그 몇만원 아끼겠다고, 창문 없이 그렇게들 살아. 나도 고시원 살면서 알았다.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값이 7만원쯤 한다는 거."
도기택은 '우리에겐 창문도 있고 직장도 있다'는 장강호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평생 월급 안쓰고 모아도 내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세상, 무슨 희망을 갖고 살아야할까. 가난이 대문을 두드리면, 사랑이 창문으로 달아난대. 내 처지에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와서 무슨 고생을 시키겠다고."
어린 시절 읽었던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노래'를 떠올린 사람이 기자만은 아니었으리라. 11화 속 은장도 트리오, 현실 속 가난한 청춘들의 마음이 이 한줄에 담겼다.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