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닷컴 이지현 기자] 자백과 고백, 그리고 거짓말
"그 당시 주변에 유사사건이 많았어요. 그놈들이 다 줄곧 해왔다고 보면됩니다. 강도짓하는 거는 아무나 못해요. 한 번 해가지고 그 희열을 느끼는 놈은 반복적으로 계속 하게 돼있어요." - 당시 해당지역 순경
엄궁동 2인조의 자백
"엄궁동 사건은 직접증거가 없는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을 마주하고 순간적으로 직감했죠. 아무래도 엄궁동 살인사건에 관련됐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무실로 데려가서 왜 죽였어? 하니까 바로 쫙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 입으로 말이죠." - 사건담당 수사관
범인임을 확신하는 수사관의 주장과는 달리, 체포된 2인조에 대한 조사과정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10여 차례가 넘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범행과 관련된 진술을 두 사람이 끊임없이 번복한 것이다. 누가, 왜,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박씨를 죽였는지 등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진술조차 조사 초기에는 일관성 있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두 사람의 진술이 정리된 정황이 있었던 것이다. 최종 수사 결과, 검거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 박씨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장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고 두 사람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를 거쳐 대법원에서도 판결은 번복되지 않았다.
엄궁동 2인조의 고백
그로부터 21년 후, 두 사람은 감형을 받고 출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미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그들은 오로지 진실만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제작진은 이른바 엄궁동 사건의 2인조 범인인 최씨와 장씨가 재판이 시작된 후부터 20년 넘게 일관되게 주장한 내용의 실체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의 무죄를 확신한다며 변호를 맡았던 사람은 당시 부산에서 활동했던 문재인 변호사. 사건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그는 제작진에게 특히 장씨가 강력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씨는 당시에 시력이 아주 나빴어요. 그런데 범행 장소는 완전 돌밭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날은 달도 없는 캄캄한, 그런 밤이었죠. 그런데 거기서 쫓고 쫓기는 식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을 때 나름의 확신을 가졌죠." - 사건담당 변호인 문재인
장씨의 시력으로는 범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장씨의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는 사실은 최씨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과정에서 장씨를 엄궁동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른 사건 용의자로 먼저 체포된 최씨가 형사들로부터 이른 바 '공사'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씨는 이미 혐의를 인정했으니 최씨도 혐의를 인정하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속임수, 일명 '공사'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조서를)써오더라고요. 공사 안 당할라거든. 이대로 읽으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주임님이 묻거든 이대로 답만해줘라." - 엄궁동 2인조 최씨
두 사람의 주장대로 그들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던 걸까? 그들은 어떻게 직접증거가 하나도 없는 사건에서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만일 그들이 범인 아니라면 엄궁동 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엄궁동 사건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과 주변 인물들을 찾아 엄궁동 2인조의 23년 전 자백과 오늘의 고백 중 무엇이 그날의 진실을 가리키는지를 파헤쳐본다.
olzllovely@sportschosun.com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