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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공포영화를 잘 못 봐요. 겁이 무척 많거든요."
그렇게 촬영에 합류한 유선은 다채로운 연기로 스크린을 채웠다. 모계를 타고 전해져온 악령에 의해 고통받는 여자 금주. 빙의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뿐인 딸을 키지키 위해 악령과 맞서는 인물이다. 1인 2역이나 다름 없는 캐릭터 설정에 절절한 모성애와 극한의 공포감까지 홀로 감당했다.
"존재 자체에 집중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기였어요. 빙의라는 게 과학적인 참고자료가 있는 게 아니라서 연기적으로 창조하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나는 지금 다른 영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곤 했죠. 관객이 믿도록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렇게나 겁이 많은 유선에게 '호러퀸', '스릴러퀸'이란 수식어가 붙다니 자못 흥미롭다. 영화 '검은집', '이끼', '4인용 식탁' 등 스릴러나 공포물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다. 특유의 단정하고 단아한 이미지는 공포영화 안에서 서늘한 기운으로 변주됐고, 그의 기품 어린 연기는 영화의 격을 높였다. 물론 장르적 치우침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반대로 한 장르에 강점을 지녔다는 건 배우에겐 소중한 자산이다. "무엇이 됐든 '퀸'이라 불린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했다는 뜻이니까요."
'퇴마, 무녀굴' 속편이 제작된다면 다시 출연할 생각이다. 두 달간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하면서 끈끈한 동료애를 쌓은 김성균, 차예련, 김혜성과 이미 약속했다. 김휘 감독은 벌써 초안을 작성 중이라고 한다. "현장의 팀워크가 너무 좋았어요. 벌써부터 다시 만날 그 순간을 꿈꾸고 있어요. '조선명탐정'처럼 저희 영화도 시리즈로 제작되길 바라요."
'퇴마, 무녀굴'이 유선에게 남다른 작품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첫 딸을 얻은 이후 스크린 복귀작이기 때문.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으로 인한 변화가 이 영화에 녹아들었다.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연기할 때도 여유가 생겼어요. 예전엔 배우로서의 과제가 많을수록 부담감이 커서 고심했지만, 이젠 그런 부담감에 감사해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도 이유 없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담긴 작품은 불편해서 배제하게 되더군요. 대신 메시지가 분명하고 주제의식이 담긴 작품을 더 눈여겨보고 있어요."
연기력으로는 손꼽히는 유선도 때때로 초조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역할이 제한되고 새로운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영화계. 그래서 "유선이라는 배우를 꼭 찾아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느낀다. "저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작업도 한번쯤은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작품도 있었는데, 그쪽에선 모험이라고 생각하시더군요. 그런데 제 안에는 장난기와 유머도 있거든요. 이번에 김휘 감독도 그걸 봐주셨고요. 이젠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고 싶어요."
유선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될 것 같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연한 '라디오스타'가 화제몰이를 제대로 했고,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도 출연한다. 그러니 유선의 공포 연기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은 빨리 영화관을 찾는 게 좋겠다. 김표향 가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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