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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선택이었다. '쉬리'로 시작해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 웨이'를 만든 강제규 감독이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단다. 그래서 생각했다. '로맨스 영화도 제작비 100억을 넘기겠네' '군인이 전투에 참가했다가 여자 스파이와 사랑에 빠지나'라고 말이다. 하지만 강 감독이 내세운 주인공은 70대의 배우 박근형과 아직 일흔을 1년 남겨놓은 배우 윤여정이었고 배경은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였다. 뭔가 이상했다.
사실 '장수상회'는 슬픈 영화가 되려면 한없이 슬플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고민을 했어요. 정말 사실적이고 슬픈 영화를 만들 것이냐, 아니면 슬프지만 가슴 따뜻한 영화로 찍을 것이냐 라는 걸 말이죠. 그런데 슬프게 이야기를 풀면 저조차도 그런 상황이 힘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영화로 접근하기로 했어요."
박근형 윤여정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하는 중년 배우들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을까. "캐스팅을 했을 때 감독으로서의 걱정은 조금 있었죠.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까 하는 부분들 말이에요. 그런데 처음 뵙고 작품 전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때는 대화가 너무 잘 통했어요. 생각도 닮은 곳이 많았고요. 그동안 이 분들이 왜 좀 '까칠'하다는 시선이 있었을까. 상대방이 오히려 소통이 준비가 덜 돼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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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마이웨이'의 흥행참패는 강 감독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제 소망이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또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한국과 일본의 장벽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두껍구나 하는 것도 느꼈고요."
그래서 이번 '장수상회'는 흥행에 대한 부담보다는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를 관객들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아직도 흥미로워요. 관객들이 어떤 부분을 재미있어하고 관심있어할지를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강 감독 특유의 장르를 버린 것은 아니다. "SF가 됐든 첩보가 됐든 느와르가 됐든 그 속에 액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잖아요. 현대 영화를 논하면서 액션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아직도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장르이기도 하고요."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