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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끊이지 않았다.
불혹이 넘는 나이로 군에 재입대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연예인에게 더 어려운 일은 신입 PD의 '입봉작'(첫 연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이다. 성공 사례가 없는 시험대에 오른다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하지만 김수로는 주저없이 신입PD의 손을 잡았다. "김민종 PD때문이었다. 내가 도사도 아니고, '진짜사나이'가 잘될 줄 알겠나. MBC '승부의 신'이 종영되고 난 후에 남은 계약 회차를 게스트로 때우려고 했는데, 김민종 PD때문에 '진짜사나이'에 들어갔다." 김민종 PD는 '승부의 신' 당시 조연출로 김수로와 인연을 맺었다. '진짜사나이'는 김PD의 첫 연출작이다.
" '진짜사나이'는 나에게 딱 하나, 의리를 지킨 작품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김민종 PD와 MBC에 의리를 지킨 작품, (오는 12월) 전역까지 의리를 지킨 작품이다"고 강조했다. 사실 김수로의 어깨는 1년이 지난 현재도 불편하다. 지난해 '진짜사나이'에서 유격훈련 중 어깨 인대가 파열, 촬영 도중 접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혼자서 유격훈련에서 빠지는 것을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한 촬영에서만 빠질 게 아니라, 어깨수술과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에 이르는 재활치료에 들어가야 했다. 의리로 들어간 작품. 의리 때문에 빠질 수가 없었다. "전역하면 어깨를 회복하는 데 신경쓸 것"이라며 쿨하게 넘긴다.
"보스 기질이라기보다 예전부터 몰려다니고 이런 거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모집해서 만나고 거기서 내가 리더다. 하하.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 이런 성격 때문에, '진짜사나이'의 회식도 김수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뤄질 때가 많았다. "내가 카페를 연 게 돈을 버려고 한 게 아니다. 대학로에 공연이 있는데, 그 공연을 하는 가까운 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한 마디로 아지트같은 곳이다." 김수로는 이 카페의 운영비를 제외한 수익금을 전액 기부한다. "내 지인들과 밥 먹을 때도 내가 돈 따로 계산한다.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내가 먹는다고 돈 안내면 안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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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연극 '유럽블로그' 팀들과 유럽으로 출국한다. 새 영상을 찍어오기 위해서다. '유럽블로그'는 유쾌한 유럽 여행기를 담은 음악극이다.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 오죽하면 배우로 얻은 수익에서 몇 퍼센트는 꼬박꼬박 여행비로 쓸 정도다." 그리곤 여행을 좋아하는 계기도 들려줬다. "여행을 가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책을 읽을 시간도 확보된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수십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지 않나. 새로운 지식도 얻게 되고, 지혜와 탐구에 대한 호기심도 많은 편인데, 그것을 충족시켜준다고 할까. 서울에서 책을 읽으면 한 권을 제대로 못 읽는다. 진득하게 읽으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기내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3~4권을 보통으로 읽고 못 본 영화를 DVD로 챙겨볼 수 있다. 나한테는 여행이 완전 힐링이다. 내게 좋은 것은 남들에게도 좋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좋은 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는 여행을 조장하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이 '유럽블로그'다." 김수로의 진심이 통했을까. '유럽블로그'는 30회 40회를 본 관객도 있고, 무려 100회 넘게 본 관객까지 있을만큼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유럽으로 정한 것은 김수로의 런던 사랑이 컸다. "런던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공연과 축구가 있다. 처음 런던을 방문했던 8~9년 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가고 있다. 예전부터 세계에 나만의 도시를 가지면 어떨까란 꿈이 있었다. 런던을 방문하고, 나만의 도시가 됐고, 그 곳에서 좋은 동생도 만났다."
김수로는 첫 런던 여행에서 만난 미학을 공부한 가이드 동생과 현재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본인이 직접 가이드 동생을 도와 버스투어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갑자기 날 본 여행객들이 놀라긴 하더라. 같이 사진 많이 찍어줬다. 하하." 하지만 그보다 김수로는 함께 여행하면서 즐거움도 배가 되고, 배움도 배가 됐단다.
"너무 재밌더라. 캠브리지 교수부부와 동행했는데, 책 한권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런던을 알고 있더라." 그래서 그는 오는 12월 자신과 여행하고 싶어하는 일반인 30명의 여행 가이드를 직접 맡을 예정이다. "여행이란 게 그렇더라.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같이 가는 사람도 중요하다. 내가 직접 여행로드를 짤거다. 책에 나와있는 런던이 아닌, 김수로가 몇 년동안 겪어봤던 런던을 보여줄 계획이다." 한참을 자기가 다닌 런던의 맛집 이야기를 쏟아냈다. 벌써부터 여행 계획에 한껏 들뜬 표정이다. 좋은 곳을 공유하고 싶다는 김수로. 문득 군대고, 카페고, 연극이고, 여행이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 물어봤다. "이번 추석에 우리집을 돌아보는데, 시멘트가 지워지면서 콘트리트가 노출됐더라. 시멘트는 깨끗하긴 한데, 오래될수록 깊어지기보다 씻겨지더라. 나는 오래될수록 폭풍우도 이겨낼 줄 아는 고목이 되고 싶다. 김수로라는 고목이 돼 내 그늘에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게 소원이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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