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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말수가 줄었고, 얼굴 표정은 차분해졌다. 콧소리까지 섞여 생기발랄했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내려갔다. 이 모두가 MBC '구가의 서'에서 박청조 역을 연기한 이후의 변화다. 이유비는 "캐릭터와 닮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생글생글한 웃음, 동그란 눈, 뽀얀 얼굴이 앳되다. 하지만 분위기는 성숙했다.
이유비는 "청조가 정말 좋다"고 거듭 말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캐릭터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청조 역할을 잘 해내서 가슴이 벅차다"고도 했다. 4개월간 청조와의 만남이 남긴, 기분 좋은 후유증이다.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던 이성재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이성재 선배님은 장난기도 많고 귀여우세요. 왜 우리 두 사람이 나올 때는 '사랑이 아프다'는 애절한 OST가 안 나오냐면서 리허설 할 때 주변 분들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어요. (웃음) 연기할 때는 편하게 하면 된다고 조언도 해주시고 감정도 이끌어주셨죠. 청조로서 해야 할 저만의 역할도 있지만, 선배님께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했어요."
전작 KBS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선 송중기 이광수, '구가의 서'에선 이승기 유연석과 연기했다. 남자 파트너 복이 있는 것 같다고 하니 "제 남자 파트너는 이성재 선배님"이라면서 "멜로물 한편 찍어야 한다고 농담도 했다"고 발랄하게 웃었다.
데뷔 당시 이유비는 중견배우 견미리의 딸이란 사실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지금 이유비에게선 엄마 견미리의 그림자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칭찬을 듣으면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냐야 한다는 조급함은 없어요. 점점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죠." 엄마에게 어떤 조언을 받았냐고도 물었다. "사극에선 배우가 캐릭터화 돼야 한다고 하셨어요. 캐릭터를 저에게 맞춰선 안 된다고요. 현대극에선 배우의 매력이 캐릭터에 묻어나기도 하죠. 하지만 청조 같은 캐릭터는 내가 안 보이게끔 디테일한 공부를 하고 연기를 해야 캐릭터의 매력이 화면에 나오더라고요."
이유비는 연기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꿈도 커지고 책임감도 커졌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예전엔 주변의 기대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유비라는 배우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만 연기로 얻을 수 있는 희열이나 행복감을 찾게 돼요.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우는 제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성장했다는 걸 느껴요."
이유비는 지금 이화여대 성악과에 재학 중이다. 예중과 예고까지 더하면 10년 동안 성악을 했다. 성악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연기를 하고 싶어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됐죠. 그래서 엄마를 졸라서 예중에 진학했어요. 성악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거잖아요. 학업도 꼭 마칠 거예요." 그렇다면 언젠가 무대에서도 이유비를 볼 수 있게 될까? "'지킬 앤 하이드'에서 거리의 삶을 사는 여인 루시 캐릭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유비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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