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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섹시' 카사노바 류승룡이 6세 지능의 '딸바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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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은 지적 장애를 갖고 있지만 어린 딸 예승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 용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용구는 딸이 갖고 싶어하던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려다 강간 폭행과 살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7번방에 수용되고, 사랑하는 딸을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된다. 사형을 받으러 가다 예승에게 뛰어가 살고 싶다고 오열하는 모습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자칫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작품이 감동 코드로 자리 잡은 데는 류승룡의 역할이 컸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슬프지만 과장되지 않은 연기가 공감대를 형성해냈다.
그렇다면 실제 아빠 버전은 어떨까? "인생 최고의 선물이자 최고 원동력이 아이들"이라며 눈을 빛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좋아해도 독이될 수 있는 건 잘라낸다. 대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상황놀이도 하고 산책도 한다. 그런 걸 아이들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자상한 아빠지만 교육 철학은 뚜렷하다. "칭찬은 과하게 해주는 편이다. 대신 혼낼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억울함을 느끼고 그게 응어리지면 나중에 부모와의 사이가 서먹해진다. 그걸 미리 방지해야 한다. 목표가 있다면 잘못을 했건 비밀이 됐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빠한테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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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힘들다. 조직 보스('시크릿'), 백수('퀴즈왕'), 게이('개인의 취향'), 청나라 정예부대 수장('최종병기 활'), 카사노바('내 아내의 모든 것'), 킹 메이커('광해:왕이 된 남자') 등 작품마다 색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며 일찍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를 중심에 뒀기에 '마더', '말아톤', '아이엠샘' 등 기존 흥행작들과 비교도 많이 된다. "사실 전혀 다르다. '아이엠셈'은 미국의 문화와 정서, 복지를 그려냈다. 우리와는 시선 자체가 아예 다르다. 그런 증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오아시스' 설경구 선배는 경계장애, 원빈은 자폐에 가까웠다. 가장 용구와 비슷한 게 '말아톤' 조승우였는데, 그들은 엄마의 보호를 받는 피보호자였고 나는 딸이 있는 보호자였다. 완전히 다른 점이다. 그래서 용구는 새롭게 창조해야 할 정서이자 인물이었다."
그래도 부담은 됐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과하거나 희화화되지 않게 인물을 만들어가는 게 부담은 됐다." 기존 작품에서 다뤘던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수녀들이 운영하는 일산 빵 공장 복지센터에서 롤모델을 찾았다. 20대 후반의 청년을 롤모델로 삼았고, 4번 정도 만나 얘기를 나누며 힌트를 얻었다. 그렇게 용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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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몰이나 연말 시상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심지어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없다. "선 캐릭터, 후 작품이면 거기서 오는 오류가 좀 있는 것 같다. 숲이 잘 우거져 있는데 거기 잘 어울리는 나무가 있는 것. 그게 캐릭터라 생각한다."
대신 뚜렷한 연기 철학을 갖고 있다. 시간 약속과 눈. 두 가지다. "첫째는 시간 약속이다. 예전에 매서드 연기의 대가에게 한 제자가 연기를 잘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는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시간 약속'이라고 했다더라.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배우들끼리의 대사 약속, 액션 합을 지키지 않으면 다친다. 그런 게 시간 약속이고 신뢰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먼저 마음을 그 인물에 젖어들게 하면, 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미 류승룡이란 이름 석 자는 충무로의 보증수표다. 이번 '7번방의 선물'도 '베를린'의 역공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며 3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자만하지 않는다. "변함없지만 변화하는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연기는 변화하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이대로 살아가고 싶다. 좀 잘된다고 어깨에 힘주고, 안됐다고 낙담하고 이러고 싶지 않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