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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시네마 리뷰] '모비딕' 특종을 위해 대한민국 음모론을 파헤치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1-06-08 09:34 | 최종수정 2011-06-08 15:40


영화 '모비딕' 스틸

'대한민국 최초 음모론'이란 거창한 장르의 영화가 나왔다. 누구나 예상은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었던 '정부 위의 정부'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막상 영화의 실체는 '기자'에 관한 스토리라고 해야 정확하다. 많은 영화가 그렇듯 이런 정부와 사회 속 권력과의 싸움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형사거나 기자 혹은 검사다. 주인공 이방우 기자를 연기한 배우 황정민은 영화 '부당거래'에서는 형사를 '모비딕'에서는 기자를 연기 했다. 그래서 두 영화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부당거래'는 싸움의 주인공들이 표면 위로 여실히 드러나는 반면 '모비딕'에서는 암흑속의 존재로만 나타날 뿐이다. 황정민은 형사와 기자는 달라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연기했다고 하니 그 차이도 기대가 되었다.

박인제 감독은 사람들이 '모비딕'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해서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모비딕'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모비딕 뜻'이라고 나온다. '모비딕'은 미국의 작가 멜빌이 지은 해양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에 등장하는 흰 고래의 이름이다. 흰 고래에게 한쪽 발을 잃은 후 복수의 화신이 되어 버린 선장의 추격을 그린 소설이다. 영화에서 흰 고래와 같은 거대한 조직과 이방우의 힘겨운 싸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인제 감독은 "영화 속의 '모비딕'은 사건의 중요한 장소임과 동시에 거대한 악을 상징하는 중의적인 뜻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1990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 이병이 민간인 사찰 대상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탈영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해온 것을 밝혔고,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었다. 기자를 소재로 영화를 준비하던 박인제 감독은 이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서 윤석양 이병을 윤혁(진구)으로 재탄생시켰다. 영화 속에서 비밀조직의 아지트로 등장하는 모비딕 호프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공간이다. 간판의 글씨체 역시 실제 모비딕의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영화의 처음은 1994년 발암교가 폭발하는 장면을 CCTV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 폭발과 함께 영화 속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사건을 추적하던 사회부 기자 이방우 앞에 어느 날 고향 후배 윤혁이 나타나 자료들을 건네며 발암교 사건이 보이는 것과 달리 조작된 사건임을 알린다. 그래서 이방우는 동료기자 성효관(김민희), 손진기(김상호)와 함께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진실을 향한 사투를 시작한다. 이들을 막으려는 세력에 의해 많은 장애물에 부딪히고 소중한 것도 잃으면서 더 목숨을 걸게 된다. 그런 몇몇 요소들이 영화의 스릴을 더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동기부여가 된 계기나 인물의 배경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특히 이 사건의 진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윤혁의 경우가 그렇다. 그를 보면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난다. 한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고 그러면서 결국 이성보다 앞선 감성 때문에 겪는 고통. 인간의 관음증은 첫 장면이었던 CCTV와 연결이 된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시선에 노출되어 감시를 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당하는 자의 고통의 목소리와 반대로 감시하는 자의 고통, 그의 양심을 가장 큰 증거로 삼은 면이 새로웠다.

영화가 끝나고 두 가지 의문이 남았다. '과거에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을까'와 '그래서 도대체 정부위에 정부는 뭐하는 사람들인가'다. 다행히 기자간담회에서 이 두 가지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박인제 감독은 아날로그 시대 과거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시점을 그 당시로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핸드폰만 있었어도' 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만큼 현재의 시점에선 공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둘째로, 음모론의 정체를 끝까지 파헤친다면 그 음모는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노력하던 이방우도 큰 고래의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 영화는 음모론보다는 기자의 사명감 정도가 주제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음모론의 궁금증은 시원하게 해소되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톡 쏘진 않아도 충분히 목을 축일 수는 영화다. 김윤경 청룡시네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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