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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즌 우승만 4번, 모비스 특별한 '1등 DNA'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4-05 12:19


남자 프로농구 사상 첫 챔프전 3연패의 금자탑. 모비스가 해냈다. NBA에서도 단 세 팀(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만 달성한 기록이다. KBL 출범 18년 만에 모비스가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모비스 3연패 장면. 사진제공=KBL
이같은 결과는 사실 시즌 전이나 개막 초반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유재학 감독과 구단 프런트는 내부적으로 이번 시즌 목표를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맞춰두고 있었다. 대단히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이 바탕에 깔린 목표다. 점진적인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그럴 여건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처음 잡았던 목표를 200% 초과달성했다. 우승을 거뒀고, 송창용 전준범 박구영 이대성 등의 기량도 끌어올렸다. 성적과 리빌딩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냈다.

이러한 엄청난 성과의 뒤에는 모비스만의 특별한 '1등 DNA'가 숨어있다. 사실 모비스는 한 시즌 사이에 무려 '4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그것도 넉넉한 전력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극도로 힘겨운 상황을 정면으로 이겨내고 쟁취한 1위다. 세 번은 '팀'이 거뒀고, 한 번은 유 감독과 양동근이 일궈냈다. 그 과정에서 '1등 DNA'가 큰 역할을 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 사진제공=KBL
따져보자. 시작은 지난해 8월 대만에서 열린 윌리엄존스컵 우승이다. 당시 모비스의 전력은 평소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유 감독과 성준모 코치, 양동근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가 있는 동안 김재훈, 조동현 코치가 불과 8명의 선수들을 이끌고 전지훈련차 참가한 대회였다. 함지훈은 부상 재활로 빠졌고, 로드 벤슨도 참가하지 않았다. 문태영과 라틀리프 외에는 모두 백업 선수들. 평소 모비스 전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존스컵에 참가한 '미니 모비스'의 전력은 40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때로 객관적인 전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벌어진다. '기적'이라고 하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치밀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투지가 만들어낸 성과다. 김 코치는 백업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 들었다. '만수' 유재학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동안 김 코치도 어느새 노련한 승부사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라틀리프는 팀의 확고한 중심으로 우뚝 섰다. 송창용과 전준범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에서 존스컵 우승 소식을 전해들은 유 감독은 "거기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어 그냥 맡겨놨는데, 대단한 성과를 냈다"며 크게 기뻐했었다. 우승 자체보다 백업 선수들이 수비와 조직력에 눈을 떴다는 점을 더 높이 평가했다.

이런 성과는 유 감독이 모비스에서 11년 동안 꾸준히 '1등 DNA'를 뿌려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코치는 당시 존스컵 우승 후 "사실 내가 특별히 새로운 것을 가르치거나, 뭔가를 만들어 낸 게 아니다. 우리는 계속 연습해왔던 농구를 했다. 감독님이 안계시니까 그 동안 해왔던 기본을 반복하고, 강조하셨던 것을 나 또한 강조했을 뿐"이라고 했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모비스의 시스템이 '1등 DNA'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우승은 바로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이다. 유 감독이 지휘했고, 양동근이 실행했다. 냉정히 말해 이 우승의 확률이 가장 낮았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유 감독은 해냈다. 대표팀과 함께 진천훈련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자신이 지닌 '1등 DNA'를 대표팀에 심었다. 그걸 제대로 해내려고 유 감독은 사실상 모비스를 잊었다. "거기(모비스)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냉정히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던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뿌리내린 시스템과 그걸 빈틈없이 시행해 줄 김재훈 코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표팀에 온 신경을 쏟은 결과, 한국은 아시아의 정상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이 대회의 우승은 유 감독과 양동근에게 또 다른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줬다. '안되는 게 없다'는 확신이다.


모비스 양동근과 함지훈, 그리고 클라크의 경기장면. 사진제공=KBL
세 번째와 네 번째 우승은 KBL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 모비스의 당초 목표는 '우승'이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팀치고, 우승을 원하지 않는 구단은 없다. 모비스는 우선순위를 '우승'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모비스가 우선 순위로 삼은 건 '조직'이다. 오랫동안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조직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모비스는 내부적으로 '리빌딩'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특히 시즌 초반 주전들의 부상과 피로 누적으로 정상전력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백업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고 했다.


지난해 열린 모비스와 SK전.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의 해프닝으로 기억될 전준범의 막판 자유투 반칙. 헤인즈의 자유투 실패로 모비스 승리가 확정된 뒤 안도하는 전준범. 사진제공=KBL

그렇게 정상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벤슨을 과감히 버렸다. 이기심을 앞세워 팀의 조직력을 와해시키는 선수는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팀에 독이 된다고 봤다. 대단히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벤슨을 퇴출함으로 인해 라틀리프의 책임감이 늘어났다. 대체 선수로 영입한 아이라 클라크는 '조직기여도'측면에서 벤슨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1등 DNA'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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